신은별 기자

등록 : 2017.04.20 04:40

영국 사투리 달인 “취업실패가 ‘코리안 빌리’ 만들었죠”


[이웃열전] 영국이 극찬한 유튜버 공성재씨

등록 : 2017.04.20 04:40

“영국 북부 구세주” 팬 5만명 넘어

6개월 연수가 전부인 부산토박이

BBC 취업 제안 받았지만 다음 기회로

“아직 보여주고 싶은게 많아요”

공성재씨는 영국 사투리를 현지인보다 유창하게 구사해 인기 유튜버가 됐다. 본명보다는 '코리안빌리(Korean Billy)'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홍인기 기자

‘영국 북부지역의 억양을 지킬 구세주.’ 영어의 본고장 영국 공영방송 BBC가 ‘구세주’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극찬한 이는, 해외체류 경험이라곤 영국 북부 작은 마을로 6개월 교환학생을 다녀온 게 전부인 부산토박이 공성재(26)씨다.

BBC 방송 진행자들은 공씨가 정통 영어와 미묘하게 다른, 그래서 한국인들은 거의 구별하기 어려운 리버풀 사투리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는 영상을 보고 “아주 잘한다(Very good job)”고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공씨는 리버풀,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30여 개 영국 사투리를 소개하는 영상으로 5만4,000여명(19일 기준)의 팬을 보유한 인기 유튜버(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사람)다. 본명보다 ‘코리안 빌리(Korean Billy)’라는 별칭으로, 한국보다 영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19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공씨는 “한국인이 영국 사투리를 알려주는, 흔치 않은 영상에 많은 영국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지 겨우 1년 남짓이지만, 현지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6월 BBC에 소개된 데 이어, 지난달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영어발음사전 발간 100주년을 기념해 공씨를 일주일간 초대했다. “영어학습법을 논의하고, 현지인들과 사투리 관련 행사도 진행했어요. 감회가 새롭죠, 제가 영어공부 할 때 봤던 방송, 사전을 만든 곳이 저를 찾아 주니까. 특히 BBC에서 제 영상을 방송에 소개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 왔을 땐 너무 좋더라고요.”

이번 달에는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과 함께 외국인 대상 홍보영상도 제작했다. “많은 외국인이 ‘Cheil(제일)’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헷갈려 한대요. 영국에서 꽤 절 알아봐 주니까, 제가 읽는 법을 알려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를 성공한 유튜버로 이끈 건 사실 ‘취업 실패’다. 졸업을 앞두고 열 군데 가까이 원서를 냈지만 모두 낙방했다. “방송기자가 되거나 영어, 외국문화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갈수록 심화하는 취업난에 한 번쯤 졸업을 미룰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공씨는 ‘학교 밖으로 나가야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2월 무작정 졸업했다. “일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데, 취업이 되지 않으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웃음) ‘나만의 길을 개척해보자’ 싶어서 시작한 게 유튜브였어요.”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 방이 촬영장이었어요. 초록색 전지를 벽에 붙이고, 평소 사용하던 카메라와 싸구려 삼각대로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죠. 처음엔 ‘한국에서 처음 문을 연 아시아 프랜차이즈’를 주제로 방송을 했는데, 재미는 딱히 없었어요. 영상을 본 사람이 겨우 몇 십 명 정도였으니까요.”

공씨가 좋아하는 영어로 주제를 바꾸면서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영국 북부지역 작은 마을에서 사귄 친구들을 따라 하며 배운 영국 사투리가 뜻밖에 ‘빵’ 터졌고, 지금은 공씨의 영상을 보는 팬들이 앞다퉈 감수도 해주고 ‘이런 주제는 어떠냐’고 제안도 한다.

얼마 전엔 꿈에 그리던 기업 BBC에서 취업 제안도 받았다. “곧 한국지사를 만든다며 ‘같이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기분이 무척 좋았죠. 그런데 유튜브를 접어야 하니 아쉽더라고요. 아직 개인적으로 활동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서, 취직하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어요.”

고정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요, 혼자서 기획부터 촬영, 편집, 홍보까지 해야 하니 힘에 부칠 때도 많다. 인터넷방송에 대해 잘 모르는 부모의 걱정의 여전하다. 그럼에도 공씨는 스스로의 선택에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 응원을 받으니 행복해요.” 새로운 꿈도 생겼단다. “’현지인보다 현지인 같다’는 말도 듣지만, 어려운 사투리도 여전히 많아요. 30개 정도 되는 영국 사투리를 정말 완벽하게 마스터(통달)해 보려고요.” 그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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