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8 14:50

[애니북스토리] 명절에 알아보는 동물 문제 ‘민심’


등록 : 2017.09.28 14:50

정치인이 민심을 알아보는 지표로 삼는다는 명절이다. 명절이라는 게 사람들이 밥상머리에 억지로 끌려 나와 ‘아무 말 대잔치’라도 벌이는 때라서 그런 건가.

각자의 관심사가 다른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 주제에 집중할까 싶다마는 그런 자리에 동물 주제는 어떨까.

뜬금없이 명절에 동물 주제의 토론을 꺼내든 건 요 며칠 강연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이다. 동물 문제에는 무조건 감정적으로만 대하는 사람, 이성적인 윤리적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고 연민으로만 동물을 대하는 사람, 정보와 지식은 갖췄지만 토론 없이 혼자서 섭취하다 보니 논리가 확장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동물 문제에 대한 지적 대화의 장의 부재가 사회적 논의의 수준을 마냥 제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 반려동물과 사는 비율이 20%이니 명절에 모이는 사람들 중 한 가구 정도는 반려인일 가능성이 있고, 그렇다면 동물 주제를 슬쩍 내놓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을까. 게다가 이번 명절 연휴에 질리게 재방송할 것이 뻔한 TV 프로그램에는 동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독일 친구들은 고양이 카페에 가고, 제주도의 민박집에는 개와 고양이가 수두룩하고, 바닷가에 있다는 목장에는 고양이부터 염소까지 다양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동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게티 이미지뱅크

물론 명절은 각 세대가 다 모이는 자리라서 동물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고, 오히려 동물 주제가 나올까 봐 꺼릴 수도 있다. 개, 고양이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느니, 결혼과 임신을 못하는 원인이라는 등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 실제로 제주도 민박집의 식탁과 침대 위에 개, 고양이가 떡하니 있는 모습에 부모님이 기겁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불명확한 정보와 편견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동물 문제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물 주제는 많다. 얼마 전 길을 잃은 남의 집 개를 찾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끌고 가서 개소주로 만든 사람이 입건됐다. 반려견은 물론 길고양이를 불법 포획해서 건강원에 파는 등 이런 종류의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는다. 언제라도 우리 집 개, 돌보는 길고양이가 당할 수 있는 일이니 열띤 대화가 가능하다.

또한 이 좋은 가을날의 연휴에 연인과, 자녀와 동물원을 찾는 이도 많을 텐데 동물원 동물도 이 가을이 행복할지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어동육서, 좌포우혜…’ 정해진 격식에 맞춰 꼭 기름진 차례상을 차려야 할까? 조류독감, 살충제 계란 등 식탁 위에 오르기 전 동물들이 사는 환경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게 되었는데도 굳이!

동물에 대한 태도는 문화보다 국가 번영의 정도와 더 관계가 있다는 입장이 있다. 픽사베이

역사학자인 캐서린 그랜트의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는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동물원 동물, 모피 동물 등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사는 여러 동물의 문제를 동물권의 시각으로 두루 다룬다. 동물보호 운동이 서구 중산층 운동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물에 대한 태도는 문화보다 국가 번영의 정도와 더 관계가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개식용 반대는 물론 동물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문화 사대주의라고 비판 받기 일쑤인데 알아두면 대화할 때 쓸모 있는 지식이다.

하지만 명절이 지적 대화의 장이 되면 좋겠다는 내 바람은 어쩐지 불가능해 보인다. 명절은 어느 때보다 가족 내에서 구세대와 신세대, 남자와 여자 등 상호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때이다. 또한 갈등이 총 집합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명절에 동생의 치통으로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사람들로 넘쳐나서 놀랐다. 명절이면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이어져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간호사가 귀띔해줬다.

명절 민심 토론의 장에 동물 문제도 슬쩍 올랐으면 하는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게티 이미지뱅크

사실 동물 문제는 단독 사안이 아니다. 동물 문제는 내가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상대를 대하는 법,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통로다. 여성, 인권, 노동, 인종 문제 등이 다 같은 선상에 있다.

동물 문제는 인간의 근거 없는 오만한 우월감을 극복하게 해주는 좋은 주제다. 사람들이 동물 문제에 대해 마음을 열면 가부장제 사회의 명절에 고통 받는 여성, 명절의 병원 응급실을 꽉 채운 사람들의 문제가 보일 수도 있다. 명절 민심 토론의 장에 동물 문제도 슬쩍 올랐으면 하는 바람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참고한 책: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 캐서린 그랜트, 이후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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