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4 09:00

우버보다 낫다…말레이 현지 콜택시 '그랩' 체험기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92)]코타키나발루에서 현지인을 여행하다

등록 : 2018.02.24 09:00

출국 이틀 전, 코타키나발루에서 렌터카를 반납했다. 그리고 콜택시를 불렀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싸고 빠르다.

이 성은이 망극한 주인공은 바로 그랩(Grab). 우버(Uber)보다 아시아권에 돌풍을 일으킨 공유경제의 대마왕 택시다.


*이하 코타키나발루는 현지인이 부르듯 ‘KK(케이케이)’로 통일.

남의 집만큼 남의 차 구경도 흥미롭다. 기사의 냄새와 취향이 몰려오는 ‘그랩 카’ 시승 중.

이름 그대로 단단히 붙잡히는 마력, 그랩. 현지 휴대전화 번호로 등록해야 한다.

“버스는 이용하기 힘들어, 무조건 그랩!” 걸어 다니는 광고라도 되는 양 숙소 매니저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오프라인 구글맵조차 겨우 깔짝대는, 우리 같은 아날로그 여행자에겐 신세계였다. ‘버스=불편’으로 통하는 KK에선 현지인조차 그랩을 애용한다.

그랩이란, 승객 편에서는 우버와 비슷한 민간인 콜택시 서비스다. 기사 편에서는 우버보다 좀 더 짭짤하고 투명한 수익을 창출하는 풀 혹은 파트 타임 직업이 된다. 이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에 전격 합류하기 위해 일단 유심칩이 필요했다. 앱 이용 시 현지 휴대전화 번호를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여행자가 입국 시 공항에서 치를 일을 시내에서 해야만 하는 상황. 렌터카 업체 근처 수리아사바(Suria Sabah) 쇼핑몰로 갔다. 디지(digi) 유심칩을 구매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그런 건 지금 없는데, 신용카드로 대체하면 안될까? 절대 안돼! 세상을 구할, 정직한 매니저였다. 매몰차게 거부 당한 후 맞은편 블루큐브(bluecube) 이동통신사로 갔다. ‘신분증이 없는데…’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케이! 이틀만 사용하길 원했지만, 일주일 유심칩도 가격이 같다는 조언이었다. 통화와 인터넷 사용까지 포함해 20MYR(약5,500원, 1링기트는 약 275원)이다. 그랩 요금이 저렴하다고 해도, 이쯤 되면 일반 택시를 타는 게 낫지 않을까? 본전 생각이 아득했다. 이때까지는.

첫 시승, 싸고 빠르고 흥미롭다

현재 위치로 바글바글 몰려드는 차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 이동엔 문제가 없겠군.

유심칩이 휴대전화에서 본격 작동하기까지 1시간여가 필요했다. 파리 날리는 쇼핑몰을 물 만난 제비처럼 쓸고 다녔다. 그리고 앱을 켰다. 위치 추적도 승인했다. 다음 행선지인 사바박물관(Muzium Negeri Sabah)까지 운송할 택시는 얼마나? 지도 위에 도처에 있는 새하얀 차들이 벌떼처럼 우리 쪽으로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띵동! 차량 브랜드와 색상, 번호와 함께 곧 만날 기사의 얼굴과 이름이 떴다. 진행은 카카오 택시와 동일했다. 단, 가격이 바로 뜬다. 고정 금액이다. 길이 막히든 뚫리든 기사 맘대로 뱅뱅 돌든 같다. 눈을 의심했다. 6MYR(1,600원)였다.

“좋은 오후야~.” 반납한 렌터카와 같은 경차의 실내는 쾌적했다. 기사인 팡은 이 운송업을 풀 타임으로 뛰고 있다. KK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이곳에서 현지인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한 끼 식사로 7MYR(1,900원)면 충분했으나 이제 15MYR(4,100원)는 감수해야 한단다. 예전에는 중국인으로 포화 상태였는데, 최근 한국인으로 대체된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의 체감은 정확했다. 사바주의 공식 관광 통계에 따르면, 2016년에 비해 지난해 한국인 여행자가 57%의 압도적인 증가율을 보였다. 그랩을 이용하는 나 같은 한국인 여행자가 당신에게 안녕을 주는 것인지, 불편을 주는 것인지 직접 묻지 않았다. 사바박물관에 가까워지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일반 택시보다 달콤한 거리감

말레이시아 태생 기업인 그랩이 지금처럼 KK에서 탄력을 받은 건 재작년 즈음이다(시초는 휴대전화 기반 일반 콜택시 형태). 자가용의 택시화, ‘그랩 카’의 탄생이었다. 처음엔 일반 택시의 눈칫밥을 제대로 먹었다. 쉬쉬하며 택시 근방에는 가지도 못했다. 현재는 정부 차원에서 허락한 서비스로, 당당히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차량도 다인용, 프리미엄급 등 여러 형태로 구분해 4명 이하 여행자가 시내권에서 이동한다면 ‘그랩 카’가 제격이다.

탄중아루 해변의 배트맨 노을. 돌아가는 길엔 그랩 기사가 배트맨이 돼 주었다.

5분 이상 차를 기다려야 할 땐 취소하고 다시 불렀다. 그러면 누군가 반드시 빠르게 나타난다.

탄중아루 해변의 진한 노을에 가슴을 녹이고 앱을 켰다. 바로 곁에서는 일반 택시의 점잖은, 다시 말하면 장사하기 글러 먹은 호객 행위가 이어졌다. KK 시내권만 해도 3,000여대의 택시가 도로를 달리거나 손님을 기다린다. 이들에겐 택시용 주차 구간도 따로 있다. 공항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기름값이 아무리 비싸져도 일반 택시는 할 게 못돼.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거든.” 일반 택시 기사의 경험이 있는 한 그랩 기사의 ‘쯧쯧’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교통 체증이 시작되는 오후 6시였다. 일반 택시가 혼선을 빚는 탄중아루 해변답게, 그랩 기사와의 접선이 아노미 상태다. 우버와 달리 실시간 문자가 가능했다. 통화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차에 탑승했다. ‘뽀대나는’ 포드 SUV다. 평생 타보지 못할 차를 매번 갈아치우는 사치 역시 그랩의 달콤한 유혹이겠지. 숙소까지는 약 4.8km, 시승(?) 가격은 고작 6MYR이었다.

그랩을 잡다, 현지인을 여행하다

그 후로도 10번이나 그랩을 이용했고, 10명의 기사를 만났다. 함자흐는 다른 직업을 구하는 파트 타임 기사였다. 또 다른 기사 판은 하루 6시간 정도는 배너를 만드는 광고 본업에 종사한 후 그보다 많은 7시간을 운전대에 투자한다고 했다. 아즈리는 멀쩡하게 아핀은행(Affin Bank)의 판매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의 스케줄을 묻더니, 명함을 바로 건네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펼쳤다.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보다 남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있었다. 물론, 통장에 ‘따박따박’ 박히는 금액 역시 무시할 순 없었을 거다.

KK에서 우버가 그랩보다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는 입금시스템 때문이다. 그랩은 선지급, 우버는 후지급이다. 실제일까 의심되지만, 가끔 우버는 입금 오류가 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한 달이 아닌 매주 수입이 정산되는 것 역시 기사들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복권 당첨 같은 당근도 있다. 손님의 불만이 없고(손님은 탑승 후기를 남길 수 있다), 주당 200회 손님을 태우면 보너스로 600MYR(16만5,000원)가 수중에 떨어진다.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은 아닐 거다. 연식이 9년 이상된 차는 받아주지 않고 무사고 경력까지 꼼꼼히 챙기는 등 그랩 기사의 조건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짭짤한 입맛이 다셔졌다. 그랩 기사를 하면서 소설을 한번 써볼까?

히스토리를 검색하면, 여행자가 이동한 구간이 추적된다. 때론 기억상실증을 겪는 여행 기록에도 도움이 된다.

뚫리거나 막히거나. 달리는 차 안에서 여러 인생의 도로를 마주한다.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50대 중년 바사리가 우릴 에스코트했다. 은퇴 후 연금 받을 나이가 된 그의 제2전성기는 그랩과 함께다. 그랩은 여러모로 선물을 주었다. 부인의 잔소리로부터 피신처(!)를 만들어준 것은 물론, 두둑한 목돈까지 챙겨줬다. 여행자와 대화하며 그도 또 다른 여행을 맛본다. 노년의 실버보험보다 얼마나 든든한가.

그가 손수 건넨 짐을 받아 드니, 공항 문이 열렸다. 현지인을 한차례 여행한 기분이었다. 공유경제를 꼭 수입(돈)이라는 개념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우린 함께 인생이란 여러 다른 길을 걷는다는, 강한 숨을 얻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