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08 14:00
수정 : 2017.08.08 14:00

[애니북스토리] 죽음의 의미마저 왜곡되는 동물원 속 동물들


등록 : 2017.08.08 14:00
수정 : 2017.08.08 14:00

지난 1월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왼쪽)와 지난 7월 열일곱 살의 나이로 사망한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크레인의 어린 시절. 연합뉴스,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 스틸컷

며칠 사이 부고가 이어졌다.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크레인’과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의 죽음.

크레인의 죽음은 야생에서의 수명보다 더 살았으니 장수한 거라는 기사가 되었고, 남극이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15년간 즐거움을 주었으니 추모비 건립이 추진될 거라는 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쏙 빠진 글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의 노예로 산 야생동물은 죽음마저 왜곡된다.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에 새끼 호랑이 크레인이 나온다. 2000년 근친교배로 태어나 안면기형, 부정교합 등의 선천성 질병을 지녔고, 어미에게서 떨어져 인공 포육된(크레인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흔히 동물원에서는 관람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인기종을 인공포육 한다) 크레인은 영화 속에서 짧은 줄에 묶인 채 순응하는 훈련을 받으며 울부짖는다. 당시 크레인은 TV 동물 프로그램에도 출연해서 인기를 얻었는데 TV 속 동물의 모습은 현란한 편집이 만들어내는 거짓임을 크레인의 울음소리가 증명했다. 그 후 잊혀졌던 크레인이 부도나기 직전의 지방 동물원에서 곧 굶어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으로 2012년 나타났고,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지만 나아진 환경을 누리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다가 떠났다.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도 동물원에서 태어났다. 북극에는 가보지도 못한 북극곰. 해외 동물원에서 태어난 남극이는 2002년에 오월드로 왔는데 함께 온 북극이가 3년 만에 죽은 이후 혼자 외로이 지냈다. 북극곰은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사는 동물로 동물원에서 키워서는 안 되는 4대 동물(북극곰, 코끼리, 돌고래, 대형 유인원) 중의 하나이다. 동물원의 북극곰은 야생의 북극곰에 비해서 무려 백만 배 이상 작은 공간에 갇혀서 산다. 백만 배라니, 인간으로 치면 평생 관에 갇혀 사는 것과 같을까. 그렇게 동물원은 남의 불행을 엿보러 가는 곳이 되었다.

10년 전쯤 동물원 동물에 관한 책을 출간하려고 국내 저자를 찾았는데 동물의 입장에서 글을 써 줄 전문가를 찾지 못했다. 만난 사람 중에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향해 그럼 세상에서 동물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면서 따진 사람도 있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 동물권에 관한 논의가 없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고통 받는 동물을 보면서 즐기는 관람객이나 동물의 고통을 무시하고 동물에 대해서 쓰는 글쟁이나 동물을 대상화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7,8년이 지나서야 국내 저자가 쓴 우리나라 동물원에 관한 책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를 낼 수 있었다.

2004년 원주 드림랜드에서 극심한 영양실조와 피부병에 시달리던 호랑이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세계 어느 곳이나 동물원 문제는 비슷하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 문제에 관심을 둔 선진국은 기후가 적합하지 않은 동물은 전시를 포기하고, 개체 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종 보전의 역할을 하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의 동물원에서 동물은 본래 환경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오락의 대상이 되고, 근친교배를 당하고, 무차별 번식되고, 거래된다. 거대하고 잔인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오락 상품이 되는 것이다.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를 출간한 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동물원을 걷는 행사를 여러 번 진행했다. 글로만 읽어도 마음 아픈 동물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은 힘든 일인데도 많은 독자들이 함께 했다. 그런데 행사에는 매번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이 합류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 무리를 조용히 관찰하거나 조롱했다. 구멍가게 출판사의 소박한 행사에 관심을 보여주다니 조롱도 반가웠다. 저항이 있다는 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증거라는데 우리가 그 균열의 시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전 오월드의 북극곰 남극이가 지난해 7월 생전 북극곰 우리 안에 더위를 식히라고 던져진 과일 얼음을 붙잡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대전 오월드 행사 때는 남극이를 직접 봤다. 저자는 남극이가 국내 북극곰들 중 가장 심한 정형행동을 보이고, 내실로 통하는 문 앞에서 서성이는 건 사람들의 시선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알고 나면, 평생 얼음 위에서 사냥하고 이동하고 번식을 하는 북극곰이 여름에 사육사가 던져준 얼음덩어리를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껴안고,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털에 녹조류가 껴서 초록색이 된 북극곰을 보고 웃을 수 없게 된다. 대전시는 시민들에게 오래 기쁨을 준 남극이를 기억할 방안을 찾는다고 하는데 부디 다시는 북극곰을 전시하지 않는 것으로 올바로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최혁준,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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