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4 10:00
수정 : 2017.07.24 16:39

인내 한계 짜증 폭발…진땀나는 보라카이 탈출기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77)-보라카이에서 배낭여행자가 사는 법3

등록 : 2017.07.24 10:00
수정 : 2017.07.24 16:39


보라카이에서 배낭여행자가 사는 법 2

에서 이어집니다.

잘 놀았으니, 잘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곳엔 짜증과 기다림의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남의 나라 교통 여건과 출입국시스템에 굳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필요가 있을까 망설였지만, 앞으로도 보라카이를 여행하는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참고가 될 듯해 출국 경험담을 적는다. 기대하기 어렵지만 필리핀 당국이 개선책을 내놓으면 더욱 좋은 일이고.

칼리보 국제공항 밖에서 길게 줄을 선 승객들. 줄 서기가 짜증나면서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다는 생각.

마지막 한 병 남은 산미구엘을 들이켰다. 흠잡을 데 없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선선한 바람에 흐뭇해하면서. 나름의 ‘굿바이’ 인사였다. 그리고 이별 통고라도 하듯 내리치는 비, 금세 사그라질 것으로 여겼지만 멈출 기색이 없었다.

5시간 전부터 시작된 출국 전쟁

들어올 때 그랬듯, 보라카이에서 칼리보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이 쉬울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출국 비행기는 오후 11시20분인데, 숙소 주인은 늦어도 오후 7시엔 출발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공항까지 가려면 여러 교통편을 갈아타야 하고, 공항에선 줄서기가 기본인 까닭이다.

이미 물바다가 된 도로를 보며 자체적으로 1시간을 더 앞당겼다. 퇴근 시간까지 겹쳤는지 도로가 마비 상태다. 트라이시클 기사는 우리의 가격 제시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갔다. 100페소(약 2,300원)일 거란 숙소 주인의 조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카그반 항구에서 가까운 보트스테이션1에서 출발하는데도 작은 오토바이는 120페소, 큰 건 150페소를 불렀다. 오물을 튀기며 달리는 트라이시클 안에서 이건 빗물인가, 땀인가. 우린 이미 홀딱 젖은 생쥐 꼴이었다.

보라카이 시내 도로는 비만 오면 이 모양이다.

그 어떤 짓궂은 날씨도 트라이시클 기사를 멈출 수 없다. 과속과 급커브 행진은 그들의 임무 같다.

카그반 항구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각종 티켓을 사는 것. 일단 보트 티켓을 끊으려고 창구로 가니, 밴과 세트로 판매한다는 광고 문구가 눈에 띄었다. 정원이 차든 안 차든 20분마다 쾌속 출발한다는 점에 끌렸다. 25페소인 보트 승선료가 오후 6시 이후면 30페소로 오른다는 것도 서둘러야 할 이유였다. 세트 티켓을 구입한 후에는 100페소를 내고 터미널 이용 티켓을 받아 지하철 스타일의 개찰구를 통과했다. 이게 뭐라고, 행여나 종이 쪼가리를 놓칠까 손가락 근육이 잡혔다. 대체 이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할 순 없는 걸까.

보트를 타려는 줄은 어마어마했다. 보라카이 섬을 드나드는 과정 자체가 인내심 테스트다. 들어올 땐 불볕 더위 아래 환승에 익숙하지 않아서, 나갈 땐 줄이 너무 길어서다. 원양어선에 끌려가듯 풍경은 우중충했다. 난파선 같은 보트에 겨우 자리를 잡고, 예약한 밴 스티커를 가슴팍에 붙였다. 보트는 성난 파도 위에서 심하게 흔들렸다.

보트 티켓을 끊는 창구

밴+보트 세트 티켓을 끊으면 가슴팍에 붙일 스티커를 건네준다.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 밴 티켓과 탑승자 기록지, 보트 티켓, 터미널 티켓. 보라카이 출항 시 환경비는 제외된다. 터미널 티켓의 바코드를 찍고 지하철 스타일의 개찰구를 통과해야 보트를 탈 수 있다.

카그반 항구의 피할 수 없는 줄서기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왜 팔려가는 기분이 드는 걸까. 낮과는 다른, 카그반 항구-카티클란 항구를 연결하는 보트.

아찔하게 도착한 카티클란 항구. 공항행 밴 ‘삐끼’들에게 티켓이 붙은 가슴팍을 들이 밀었다. 일시에 손가락이 건너편 사무실 한 곳을 가리켰다. 황송했다. 그곳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우릴 기다리는 밴이 있다니! 다만, 12명의 영국인 단체 여행자가 동승한 까닭에 덩치 큰 일부는 몸을 반으로 접었다. 자, 이제 공항으로 출발이다.

공항은 줄서기와 손가락질의 천국

입국 시 눈치챘지만, 칼리보 공항은 이곳이 국제공항인지 의심할 수준이었다. 입국할 때 본 공항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여긴 인기가수의 콘서트장일까? 사람들이 공항 밖까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넋을 잃고 잠시 보고 있자니 단체 여행객이라도 붙으면 줄이 100m는 거뜬히 넘을 태세다. 공항 출입문을 딱 넘고서야 긴 줄의 기원(!)을 알아챘다. 짐 검사대가 출입구 바로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짐만 보내는 현지인, 출국하려는 여행자가 뒤섞여 있었다. 난민이 된 듯 어리둥절해 하는데, 공항 직원이 손가락으로 해당 항공사 탑승 수속 창구를 가리킨다. 책상이 흔들거리는 간이식이었다. 출국 티켓을 받으니 또 바로 옆 창구를 가리키는 스튜어디스의 손가락질, 공항세를 내는 창구다.

문 앞에서 검색을 하기 때문에 공항 밖은 인산인해.

필리핀을 떠나려면 공항이용료 700페소를 내야 한다. 문제는 이 많은 승객을 체크하는 직원이 달랑 한 명이었다는 것. 일당백을 하는 직장인이로구나! 서 있기도 여의치 않는 공간에서 또 줄서기가 시작된다. 거스름돈을 느릿느릿 내어주고, 얼마인지 답하고, 왜 공항세를 내야 하는지 실랑이를 하는 등 ‘세월아 네월아’다. 진정한 국제공항으로 거듭나기 위한 건설기금일까? 그렇다면 좋겠다.

공항과 여행자에게 고함, 기본에 대하여

우린 적응력 하나는 기똥찬 여행자였다. 상황을 보니 뭐든 서두르는 게 상책이었다. 달랑 2곳만 열린 출국 심사대에서 여권에 도장을 받고 마지막 보안 검색대를 거쳤다. 별도로 노트북을 빼지 않고 통째로 짐을 검사해도 괜찮나 하는 생각은 사치였다. 탑승 대합실은 상상과 달리 완전히 시장통이다. 1층은 매점(수준이 딱 그랬다), 2층은 무늬만 면세점이다. 연결 계단엔 승객들이 아예 자리를 폈다. 3줄로 나뉘어 양쪽 가에 앉은 사람들 사이로 겨우 걸어갈만한 통로가 열려 있었다. 어렵게 1층 매점 근처에 좌석을 잡았다. 라면 냄새가 솔솔 풍기고 파리가 날아다녔다. 2층을 훑고 내려온 탕탕은 소음이 적다며 올라가길 권했다. 여기보단 낫겠지, 엉덩이를 뗀 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해변만 자랑 말고 공항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칼리보 국제공항의 1층.

1층 매점의 인기 메뉴는 컵라면. 칼리보 공항은 중국 시장통에서 한국 음식 전문점을 만난 기분.

여행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공항, 이기적인 여행자로 인해 계단으로 쫓겨난 피해자들.

“이건 정말 못 참겠어!”

여러모로 짜증 지수가 높아진 탕탕이 결국 폭발했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한 중국인 남자가 대자로 누워 있고, 일행인 여자는 앉은 채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다른 한 자리엔 짐을 올려 놓았다. 탕탕이 언성을 높이니 순식간에 3자리가 났다. 뒷좌석에 누웠던 사내도 덩달아 일어난 것이다.

보라카이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휴양지다. 칼리보 국제공항에 묻는다. 전세계 여행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전세계 여행자에게 묻는다. 여행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었는가. 오후 10시, 웅웅대는 소음, 윙윙거리는 파리···. 야밤의 필리핀 국제공항에서 한국이 몹시 그리워졌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