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기자

등록 : 2017.02.25 04:40
수정 : 2017.02.27 22:25

"비혼 76년차, 다시 태어나도 선택은 싱글"


[비혼사회와 그 적들] 20대 비혼과 70대 비혼의 행복 대담

등록 : 2017.02.25 04:40
수정 : 2017.02.27 22:25

#1

국내 첫 독신女 모임 만든 김애순씨

편견 심했던 시대 속앓이 했지만

일, 캠핑 즐기며 후회 없이 살아

요새는 틈틈이 자원봉사 “외롭지 않아요”

#2

‘계간홀로’ 창간한 이진송씨

‘표준 가정’ 위한 희생 싫어

가족 대신 느슨한 연대를 선택

기혼-미혼 이분법, 이젠 끝내야죠

비혼주의자 김애순(76)씨와 이진송(29)씨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비혼과 결혼을 저울질하거나, 무조건 독신을 권장할 생각은 없지만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평생 외롭게 살래? 나이 들면 후회한다. 그러다 혼자 죽으면 어쩔래?” 결혼을 독촉하는 이런 3대 협박 레퍼토리는 얼마나 합당할까. 고령의 비혼자는 정말 외로움에 사무쳐 후회가 막급할까.

김애순(76)씨의 답은 “노(No)”다. 그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비혼이든 아니든, 죽음은 누구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과업이에요.”

1941년생인 그는 싱글에 대한 인식이 최근보다 훨씬 박하던 시대를 거쳐온 비혼이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공무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국회의원 비서관, 월간지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이어졌다. 1990년 국내 첫 독신여성 모임 한국여성한마음회를 만들며 ‘싱글 파라다이스’를 꿈꾸기도 했던 그다. 1994년 수필집 '독신! 그 무한한 자유'를, 2002년 '독신! 그 멋과 매력'을 펴냈다. 2015년엔 평소 소신을 담은 '싱글들의 파라다이스'(답게 출판)를 썼다.

이런 ‘비혼 선배’와 20대 비혼주의자 이진송(29)씨가 마주 앉았다. ‘비연애 칼럼니스트’인 이씨는 2013년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창간한 발행인이다. 경기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마련된 대담에서 두 사람의 ‘비혼 철학’을 들었다. 그들은 왜 비혼을 택했나. 이 선택을 통해 누린 것과 겪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비혼도 함께 행복한 사회의 조건은 무엇일까.

-비혼 결심의 계기는?

김애순(76)씨(이하 김)= “아버지가 하도 바람을 많이 피워서.”(웃음)

이진송(29)씨(이하 이)= “별로라는 것을 이미 보셨군요.”

김= “사실 제가 꿈이 컸어요. 변호사가 돼서 어려운 사람 변론해 줘야겠다고 꿈꿨고, 결혼해서 어머니처럼 살면서 그 꿈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죠. 그렇다면 난 결혼 안 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결심했어요. 사법고시 준비하다가 당시 암암리에 시험문제가 유출된다는 기사를 보고 절망해 접긴 했지만. 두 번째 이유로는 아버지가 18세에 결혼해서 40대까지 외도를 너무 하는 걸 본 게 컸죠. 아버지가 소위 세컨드, 작은어머니를 집에 데려와서 밥도 먹이고, 재우고. 어머니가 논에 찹쌀벼 키워놓으면 작은어머니가 베어가 버리고. 작은어머니가 아버지 애를 낳았다는데 어머니가 ‘그래도 애는 미워하면 안 된다’고 음식 해다 나르는 걸 보면서, 나는 진짜 저렇게는 못살겠다 싶었죠.”

이= “저는 오히려 부모님이 행복한 가정생활 꾸리시는 걸 보면서 컸어요. 그런데 10대 후반쯤 되니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아이 셋을 기르면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데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가사노동과 희생이 뒤따르는지. 24시간, 365일 노동이에요. 맏며느리로서 해내는 감정노동 역시 제가 보기엔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였어요. 흔히 말하는 정상가정, 표준가정이 유지되려면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왜 다들 이걸 당연하다고 하는 거지? 제가 한 인간으로 잘 살아내는 것을 다른 방법으로 보여줄 순 있어도, 저건 못하겠다 싶었어요.”

-두 분 사이 시차가 50년인데.

김= “그때나 지금이나 가사노동이 눈에 잘 안 보이거든요. 해도 표시가 안 나는데, 안 하면 대번에 티가 나요. 모르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뭐 하냐고 하죠. 지금은 거의 맞벌이를 생각하잖아요. 그러면서 예전보단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이= “이쯤 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결혼 때문에 경력 단절되고, 육아 때문에 갈등하고, 가사노동 하는 것은 여전하다고 봐요. 오히려 예전보다 사전정보가 많은 편이죠. 과거에는 아내나 며느리로서 겪는 역할갈등이 사적인 영역에 감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로 더 적나라하게 알려지거든요. 동등한 시민으로 살 수 있다고 믿고 자란 누군가가 결혼 후 어떻게 맞벌이와 가사노동을 떠맡고, 명절이면 며느리로 2등 시민의 역할을 요구 받는지가 많이 공유되죠.”

-남성 비혼도 늘어나는 추세죠.

김= “아직도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못 버리는데, 주거비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잖아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주로 사는 2030의 주거생활을 ‘지옥고’라고들 하더라고요. 가장 힘든 게 집이거든요. 밥은 어떻게든 먹고 사는데, 근간이 되는 집에서부터 막히니. 육아비도 얼마나 들겠어요.”

이= “성비도 안 맞아요. 제가 88년 용띠인데, 성감별 낙태가 심하던 해라, 출생성비(정상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3~107명 출생)가 113.2에요. 비슷한 또래의 용띠, 호랑이띠, 말띠가 다 그래요. 여자애 팔자 드세다고. 기본적으로 수가 적은데, 안 하려는 사람도 많은 상황이라….”

김애순(76)씨와 이진송(29)씨는 "결혼은 정상, 비혼은 곧 비정상으로 단정하는 풍조가 여전하지만, 그런 시선 탓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한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압박을 많이 받을 텐데요.

이= “주위에선 ‘무엇보다 애기 안 낳으면 네 존재가 사라지고 아무도 기억 못하는데 괜찮아?’ 라고 해요. 제겐 그 말이 더 충격이었어요. 저도 기혼과 비혼을 저울질하는 것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제약 없이 제도로부터 보호받으며 행복했으면 좋겠고, 저 같은 사람들도 판단을 당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 “다들 그래요. 늙어서 외로워서 어떻게 하냐고. 재미있는 건 자식이 있어도 나중엔 다 외롭거든요. 자식이 소유물도 아니고 대접받기 위해 키우는 건 아니잖아요.”

이= “애는 내가 낳아도 완전히 다른 인간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을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제가 아이한테 잘못할 수도 있고. 물론 양육에서 행복을 얻는다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꼭 그 관계에서만 자아를 의탁하고 행복을 기대해야 한다고 말하면 공감은 안돼요. 다른 관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이 있다면 안 그럴 것 같아요.”

-차별도 자주 경험하셨나요?

김= “세상풍파를 많이 겪지 않아 순진할 걸로 생각하고 돈을 쉽게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죠. 특히 방계혈육 중 그런 경우가 있어 속앓이를 했어요. 30대 초반 잡지사 기자로 근무할 때는 월급 타고 2, 3일도 못 돼서 유독 비혼인 나한테만 돈 빌려달라는 ‘상습적 적자인생’이 있었어요. 일일이 말대꾸 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싱글인 이유를 묻는 건 기본이고요. 정신과나 산부인과 쪽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사람한텐 이렇게 말해줬죠. 분명히 말하건대 제 건강 전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웃음)

이= “저도 잡지 만들기 전에는, 25세까지 연애를 안 했다고 하면 보는 사람마다 꼬치꼬치 캐묻고 ‘문제 있냐, 어떻게 한번도 안 하냐’를 따졌어요. 하도 그러니까 ‘남자친구하고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다’고 적당히 둘러대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람들은 결혼이나 연애를 하면 그 자체로 정상성이 담보된다고 믿고 싶은 것 같아요. 마치 연애나 결혼을 하면 모든 정상성을 획득하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비정상인 것처럼.”

김= “그런 하나도 영양가 없는 말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거죠. 나도 요새는 누가 물어보면 남편은 없고 애들은 다 커서 외국 가서 산다고 그래요. 말 많아지면 피곤하니까. 친해지면 그때 사실대로 얘기하고.”

이= “요즘 2030들은 누가 남친 있냐고 자꾸 물어보면 ‘감옥 갔어요’ 받아치라고 그래요. 대화차단 기술 같은 거죠.”(웃음)

-사실 가족들이 복병이잖아요.

김= “친척들은 볼 때마다 ‘네가 뭐가 못나서 그러냐’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오히려 ‘걔는 자기 알아서 하니까 내버려 두라’고 해줬어요.”

이= “저도 어머니 본인이 결혼 안 하려고 버티다가 늦게 하신 케이스라 딱히 압력은 없는데, 저희 언니에게는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들 하세요.”

김= “그것도 마흔 넘으면 안 그래요.”

이= “앞으로 십 년을 더 버텨야 하는군요.”(웃음)

김= “명절이 문젠데 저는 큰 집 하나 빌려서 싱글 친구들하고 명절마다 따로 시간을 보냈어요. 모여서 각자 고향 방향으로 절하고 밥해 먹고요.”

이= “전 이제 안가요. 결혼 압박이 없어도 여자들만 전 부치고 행주 훔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서요. 예전에는 거기 참여해서 인정받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이걸 유지시키는 데 한 줌의 힘도 보태지 않겠다로 바뀌었어요.”

-‘늙어 외롭다’가 단골 협박인데요.

김= “사랑을 꼭 특정가족에게만 느끼려고 하면 그렇죠. 인간 정신 속 사랑이 반드시 배우자, 가족에 대한 사랑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성직자들에게는 더 큰 인류애가 있는 것처럼요. 김수환 추기경님도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잖아요. 저는 살아오는 동안 작게나마 이웃, 사회, 친지들을 위해 애썼다고 자부해요. 형제자매들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나는 간병을 자청해 병실을 지켰어요. ‘혼자 사는 사람이 만만하냐’고 푸념할 수도 있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다는 데 남다른 보람 느끼면서 오빠가 위암 수술 받을 때, 언니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다 내가 조카들과 번갈아 병실을 지켰어요. 다른 친구들도 많고요.”

김애순(76)씨는 "진정한 사랑은 고독 속에 자신을 그대로 성찰해 본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슬하에 가족을 이루진 않았지만 친지, 이웃, 사회를 향해 박애를 실천하고 살았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풍성한 인생을 만드는 법은 다양하죠.

김=”저는 농담처럼 중고차 한 대가 내 인생의 반려자라고 해왔어요. 40대 초반에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는 너무 마음이 헛헛했거든요. 수동 기어의 중고차 한 대 마련해서 울적할 때마다 핸들 잡고 숲으로 바다로 다녔어요. 신문 읽는 걸 하도 좋아해서 언니와 형부 집에 잠시 하숙할 때는 조카들이 조간 신문만 오면 “이모야! 애인 왔다” 그러고 놀렸죠. 반려자는 차, 애인은 신문, 그런 거죠.(웃음)

또 여러 시도를 했어요. 80년대에 열혈 싱글 여성 여섯 명이 기금을 모아 경기 남양주 산골에 컨테이너 건물을 지어 싱글 휴식처를 만들었거든요. 주말마다 가족 모이듯 시간되고 원하는 멤버가 모여 같이 삼겹살을 굽기도 했고, 혼자 가서는 음악을 틀어놓고 바람 쐬며 쉬기도 했어요. 당시 여섯 명 중 한 명은 지금은 하늘나라로 갔고, 또 한 친구는 강원도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네 명은 여전히 비혼으로 재미있게 살아요.”

이= “비슷한 시도일 수 있는데 저도 원룸을 하나 빌려서 공유 공간으로 사용하는 걸 구상 중이에요. 스페이스 클라우드 형식의 공간 대여 서비스를 해서 운영비를 마련하고, 비는 시간에는 공간이 필요한 싱글이나 지인들이 그때그때 사용할 수 있게요. 공간도 공간인데 저는 어떤 경험 공유의 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서류로 묶인 내 가족이 아니더라도 느슨한 연대를 통해서 서로의 경험, 생각을 공유하고 ‘잘 삽시다’ 하고 헤어지는 거죠. 그런 차원으로 88년 용띠 파티를 주최한 적이 있었어요.”

이진송(29)씨는 "비연애 담론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해서, 연애를 기준으로 나뉘는 계급이나 서열화를 비껴가고자 하는 것"이 ‘계간 홀로’의 발행 목표라고 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새로운 형태의 유대네요.

이= “변하는 가족의 개념에 대한 고려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임 ‘풀하우스’팀에서는 최근 파트너등록법, 생활동반자법 지지서명을 받고 있어요. 결혼하지 않아도, 꼭 결혼으로 결합한 남녀가 아니더라도 삶의 동반자는 파트너로 인정해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는 보호자 자격을 준다거나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거죠.”

김= “그룹 메이트를 만들거나 일종의 하우스 셰어링을 하는데, 노인들을 위해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도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병원도 같이 가고. 좋아 보여요.”

이= “사실 신혼부부가 아니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아파트 청약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고, 어떻게 보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에서도 밀려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라이프스타일은 다양해 지는데 인식이나 정책적 고려는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사실 어떨 때 보면 따라갈 생각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후회한다’는 말에 한 말씀 하신다면요?

김= “어쨌거나 저는 후회 없이 살았어요. 다시 태어나도 제 선택은 싱글이에요. 새벽에 일어나면 신문부터 읽고 요가도 하면서 건강관리 잘했고요. 후회 없이 목표 세워서 달려왔고요. 3년 전에 병원에 갔는데, 나이는 70대지만 피는 40대 수준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솔직히 의기양양했어요. 외롭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박애를 실천했어요.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어린이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해요. 딱히 결혼을 비난하거나 독신을 권장할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이런 제 얘기가 현재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이 자신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

이= “전혀 후회 없는 삶이라는 게 있나요? 우리 인생은 무수한 '가지 않은 길'과 간 길의 연속이에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러면 후회가 없고, 외롭지 않을까요.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또 선택한 것으로 인한 만족감은 공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에요. 전 후회하더라도 비혼인 걸 후회하고 싶어요. 떠밀려서 억지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럼 누굴 원망하고 후회할 때 피해자가 생기잖아요. 남 탓 하게 되고. 비혼의 스펙트럼은 아주 다양해요. 하고 싶은데 못한 사람도 있고 아예 안 하려고 결심한 사람도 있고, 결혼하고 싶지만 제도권의 승인이 없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비혼'의 상태를 유지하는 성소수자들도 있고. 인생을 기혼과 비혼으로 양분하는 사고도 이제 좀 털어버릴 때가 됐어요. 2017년이잖아요. 선생님과 제가 같은 장벽에 부딪치면 안되잖아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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