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표향 기자

등록 : 2017.01.11 18:47
수정 : 2017.01.12 01:01

일본 애니의 습격... ‘신카이 매직' 통했다


'너의 이름은.' 150만 돌풍... 오타쿠+보편적 이야기로 흥행

등록 : 2017.01.11 18:47
수정 : 2017.01.12 01:01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스틸컷. 미디어캐슬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 극장가를 습격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 4일 개봉과 동시에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10일까지 일주일 만에 15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실사에 비해 흥행에 한계가 있기 마련인 애니메이션에, 한국 극장가에선 박대 받기 일쑤인 일본 영화가 일궈낸 성과라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일본 영화로서는 역대 최다관객을 동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기록(302만명)을 뛰어넘을지도 영화계의 큰 관심사다.

‘너의 이름은.’은 꿈을 통해 몸이 뒤바뀌는 시골 소녀 미츠하와 도시 소년 타키의 운명적인 사랑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적을 그린다. 첫 사랑 이야기가 품은 문학적 감수성과 시공간의 장벽이 빚어내는 그리움의 정서가 영화 전면에 흐른다. 국적과 성별, 나이와는 무관한 보편적 감성에 기반하고 있어 한국 관객에게도 호소력 있게 다가갔다는 평이다. 한 영화 홍보사의 관계자는 “어린 시절 일본 TV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30~40대에겐 옛날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아련한 향수까지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힘은 서점가에서도 확인된다. 신카이 감독이 직접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교보문고에서 11일 현재 온라인 주간(3일~10일) 베스트셀러 1위이고, 애니메이션에 없는 주변 인물의 이야기 4편을 담은 ‘너의 이름은 특별판’은 5위에 올라 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는 같은 기간 두 책이 각각 베스트셀러 1, 2위를 기록했다.

‘빛의 마술사’ ‘배경의 신’이라 불리는 신카이 감독 특유의 영상미는 영화의 인기를 견인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일본에서는 관객들이 영화의 배경 장소를 찾아다니는 ‘성지 순례’가 유행했을 정도다.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 섬세한 배경 묘사와 빛의 다채로운 활용이 시각적 환희를 자아낸다. 특히 혜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황홀함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귀를 사로잡는 음악도 빠질 수 없다. ‘너의 이름은.’의 OST 음반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밀어내고 주요 음반 사이트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며 극장 밖 열기를 더하고 있다.

미디어캐슬 제공

극장가를 넘어 서점가와 음반계까지 휩쓴 ‘너의 이름은.’ 돌풍은 근래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 영화가 국내에서 인지도 높은 일본 애니메이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신카이 감독이 전작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 등을 통해 국내에서 두터운 팬 층을 거느리고 있지만 대중적 폭발력은 약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일부 마니아 중심의 오타쿠 문화로만 소비돼 왔다”며 “‘너의 이름은.’의 경우 오타쿠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보편적 이야기로 폐쇄적 세계의 대중적 확산을 이뤄내 공감을 획득했다”고 평했다. 김 평론가는 “신카이 감독의 단편영화들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은 데 반해 장편영화들은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며 “이번 영화는 장편임에도 빠른 전개로 이전에 없던 재미가 생겼다”고도 분석했다.

신카이 감독이 직접 밝혔듯 이 영화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한다. 소년과 소녀의 판타지 로맨스는 후반부 들어서 혜성의 충돌로 인한 대재앙과 얽히며 시대적 문제로 확장된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한국 사회와 맞닿은 지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 관객은 인물 사이의 소통과 교감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여기에 재난 상황까지 보태져 트라우마를 건드리기 때문에 호소력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이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상대의 이름을 거듭 되뇌는 장면은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정서적 울림을 안긴다.

영화 외적으로는 대진 운이 도왔다. 영화 ‘마스터’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흥행 동력을 잃으면서 ‘너의 이름은.’이 ‘흥행 무주공산’을 차지했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마스터’를 피해 다른 영화들이 개봉일을 조정한 탓에 마땅한 경쟁작도 없었다.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는 방학과도 겹쳐 설 연휴 영화들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너의 이름은.’이 흥행몰이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장기 흥행까지는 내다보기 어렵다는 부정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영화가 길고 지루했다는 평이 적지 않고, 이야기의 미흡한 개연성과 판타지의 진부함도 문제로 지적 받고 있다. 영화에서 소녀의 몸에 빙의한 소년이 여성의 몸을 대하는 관음증적 태도와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 여성 캐릭터가 불편했다는 관람평도 눈에 띈다.

지난달 31일과 이달 1일 대규모 유료시사회를 개최해 7만 5,000명을 동원하는 변칙개봉을 했던 점에 대한 반감도 영화계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너의 이름은.’의 수입사는 미디어캐슬로 덩치 작은 영화들을 주로 수입해 온 곳인데, 작은 영화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변칙개봉을 한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영화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관객 동원이 가능한 작품인데 무리수를 둬 영화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남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영화 관계자는 “‘너의 이름은.’이 더 많은 관객을 모으는 과정에서 변칙개봉 문제가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미디어캐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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