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경 기자

등록 : 2018.01.23 15:36

[고은경의 반려배려] 반려견 키우는 공무원은 없나요


등록 : 2018.01.23 15:36

지난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동물권단체 케어 등 동물단체 회원들이 리트리버 종 개들과 함께 체고 40㎝이상인 개에게 입마개를 착용하도록 하는 정부의 대책 철회를 촉구했다. 뉴스1

8년 간 안내견으로 활동하다 은퇴한 열 네 살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미담’과 안내견 시험에 떨어졌지만 반려견이 된 열 여섯 살 ‘나무’를 키우는 최선경씨는 ‘멘붕’에 빠졌다.

순한 성격의 두 노령견에게는 산책하는 게 큰 행복인데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체고(바닥에서 어깨뼈까지 높이)가 40㎝ 이상이어서 나갈 때 무조건 입마개를 착용해야 한다. 최씨는 ”3월부터 ‘할매’들 입마개를 사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한다. 2년의 유예기간을 둔다고는 하지만 안 그래도 대형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데 더욱 ‘위험한 개’ 취급을 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반려인과 동물단체들이 분노했다. 정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을 두고 반려동물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이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시작됐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사람을 공격해 상해를 입힌 이력이 있거나, 체고 40㎝ 이상인 개를 관리대상견으로 지정해 대부분 지역에서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평가를 거쳐 공격성이 높지 않고, 반려인이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 경우는 제외된다.

동물단체들은 항의집회를 열고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의원은 “농식품부에 개 키우는 공무원이 하나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동물권단체 케어 등 회원들은 체고 40㎝가 넘는다고 다 위험한 개는 아니라며 안전관리 대책에 대해 비판했다. 뉴시스

농림축산식품부가 체고를 기준으로 입마개를 의무화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개가 앞발을 들었을 때 사람의 가슴이나 목을 공격하게 되는 높이라는 점과 독일 니더작센주(40㎝), 스페인 안달루시아(50㎝) 등 해외 사례를 참고했다는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은 맞다. 하지만 위험한 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또 이를 판단할 전문가들이 있을 때에 가능한 얘기다. 견종만 가지고 위험한 개를 분류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체고 40㎝이면 다 잠재적으로 공격성이 있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다. 반려동물 선진국들의 제도를 놔두고 굳이 찾기도 어려운 독일과 스페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도 위험한 개를 등록하게 하고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체고가 아니라 각 주가 마련한 조항에 따라 행정, 민사, 또는 형사 재판을 거쳐 정한다고 한다.

정부는 공격성 평가체계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미 평가체계가 있는 미국에서도 단기간에 공격성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실효성이 있는 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또 관리대상견에서 제외되기 위한 평가 비용은 소유주가 부담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체고 40㎝ 이상 반려견을 키우는 이들에겐 입마개에 공격성 판단을 위한 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판이다.

동물권단체 '케어' 등 동물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체고 40㎝ 이상 개 입마개 의무화에 반대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케어 제공

농식품부는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농식품부 반려견 안전관리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동물단체들이 모두 반대한 이유, 반려인들이 이처럼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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