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1 11:33

[애니북스토리]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겨울을 나는 고양이들의 마음


등록 : 2017.11.21 11:33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게티이미지뱅크.

겨울, 이만큼 힘든 계절도 없다

갑자기 찾아온 초겨울 한파가 무섭다. 11월에 이 정도의 추위가 온 적이 없어서 방심하고 있다가 마음이 급해졌다.

길에서 사는 생명에게 겨울만큼 힘든 계절이 없다. 우리 집의 마당과 창고를 오가며 사는 길고양이들을 위해서는 단열 ‘뽁뽁이’(에어캡)를 두르는 등 추위를 위한 채비를 급하게 했는데 문제는 골목에서 사는 녀석들이다.

추운 겨울은 길고양이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이 동네에서 몇 년씩 사는 고양이들이라서 주차장, 텃밭, 마당 등 나름 각자의 아지트가 있는데 최근 공사를 시작한 집에서 겨울을 나던 녀석들은 갑자기 머물 곳이 없어져 버렸다. 급하게 고양이집을 구했는데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길고양이에게 호의적인 동네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공간까지 내어줄까? 그곳에서 영역 다툼이라도 한다면? 평소에 고양이들을 귀여워하던 이웃이 자신에게 작은 불편을 끼치자 매몰차고 야박하게 구는 모습을 봤기에 결정이 쉽지 않다.

고양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

마음을 나누는 법은 나보다 고양이가 탁월해서 동네에는 고양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분들이 많다.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싹싹한 동네 주민'이 됐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지만 몇몇 토박이 이웃 하고만 인사를 나눌 정도로 낯가림이 심했다. 그런데 하루 두 번씩 고양이 밥을 챙기다 보니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기도 하고, 무엇보다 밥을 주고 중성화 수술을 시키면서 같이 살려는 노력 중이라는 걸 이해시켜야 해서 이웃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골목길에서 긴 수다를 떠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니! 그야말로 고양이의 힘이다. 게다가 혹시 밥 주는 게 마뜩잖은 분의 불평을 원천봉쇄하려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을 되뇌며 실실 웃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이웃들의 별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앞집 아저씨의 파란만장한 자수성가 이야기, 고양이에게 새침한 아주머니의 어린 시절 상처, 엄마에게는 비밀이라며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 등등. 밥 먹는 길고양이 주변에 둘러서서 사람들이 털어놓는 개인의 역사, 뉴스에 한 줄 적히지 않지만 각자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이야기에 나와 고양이는 귀를 기울인다. 물론 마음을 나누는 법은 나보다 고양이가 탁월해서 동네에는 고양이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분들이 많다. 한 번은 누군가 건물 앞 계단에 앉아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긴 이야기를 하길래 그들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밥그릇을 들고 어둠 속에 숨어 있기도 했다.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어도 소중한 생명

늘 죽음과 함께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죽어 사라지는 게 이상할 것도 없이 느껴지겠지만 그들도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길고양이는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는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을 지켜본 바로는 중성화 수술을 해주지 않으면 암컷은 1년에 두 번 정도 서너 마리씩 새끼를 낳는데 아무리 잘 먹이고 보살펴도 그 해 겨울을 나서 두 살이 되는 새끼는 한두 마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많이 태어나고 많이 죽지만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늘 죽음과 함께 있다 보니 길고양이가 죽어 사라지는 게 이상할 것도 없이 느껴지겠지만 그들도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다.

캣맘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역시 곱지는 않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생명줄이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에서 어미 고양이는 “앞으로 너는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면 살아야 해.”라고 무섭게 말하며 첫째 고양이를 독립시킨다. 독립은 했지만 서툰 사냥 실력으로 배를 쫄쫄 굶던 첫째에게 한 여학생이 사료를 내밀자 첫째가 말한다. “정말 고마워.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물론 학생은 고양이의 말을 못 알아듣지만. 도시에서 배를 채울 방도가 없는 고양이들에게 모든 캣맘은 생명의 은인이다.

책 말미 작가의 말을 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 주인공들은 작가가 참여하는 공부방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준 개, 고양이들이 모티프였던 모양이다. 작가는 고양이로부터 슬픔과 아픔을 나누는 법, 기억하는 법을 배웠고, 그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도 같은 걸 고양이에게 배웠고, 배운 걸 동네 이웃들과 나누고 싶다.

길고양이로 이웃과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길고양이 겨울집 앞에서 이웃들과 산다는 것에 관해, 또 보살핌에 관해 수다를 떠는 상상을 해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길고양이 겨울집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다가 한 곳에 몇 분의 동의를 얻어 덜컥 가져다 놓았다. 일은 저질러졌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겨울집이 사라지거나 무참히 부서지거나 욕이 잔뜩 적힌 경고문이 붙을 수도 있다. 전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길고양이의 겨울집 앞에서 이웃들과 산다는 것에 관해, 또 보살핌에 관해 수다를 떠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게 길고양이 덕분에 이웃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참고한 책: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김중미, 낮은산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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