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7.11.14 17:53

금빛 나비 황금 카펫…절정의 가을 서정 속으로


아산의 마지막 가을...곡교천은행나무길ㆍ외암민속마을

등록 : 2017.11.14 17:53

노랑이 절정에 달한 곡교천 은행나무길. 이번 주말이면 가을의 서정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아산=최흥수기자

흔한 것이 은행나무 가로수다. 특유의 구린내 때문에 도심에서는 열매를 밟지 않으려 가뜩이나 조심하는 천덕꾸러기이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우수수 떨어져 바닥까지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을 보면 또 하나의 계절이 끝나가는구나 하는 감회에 젖는다. 충남 아산에서 샛노란 가을 정취에 흠뻑 빠졌다.

마음까지 노랗게 물드는 곡교천은행나무길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이맘때 위도 아래도 온통 노랑이다. 나무 기둥 빼면 온 세상이 노랗다. 그 길 따라 걸으면 몸도 마음도 노랗게 물든다. 56년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 356그루가 만들어내는 순수한 노랑에 푹 빠진다.

연인 가족 단위 여행객이 샛노란 가을정취에 푹 빠졌다.

황홀한 풍경에 ‘인증샷’도 빠질 수 없다.

아래도 위도, 세상이 온통 노랗다.

곡교천은 아산 시내를 가운데 두고 동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온양천ㆍ삽교천이 합류해 아산만으로 흘러 드는 아산의 젖줄이다. 곡교천 제방을 따라 도로를 조성한 것이 1967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처음에는 전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가, 1973년 은행나무로 바꿔 심은 게 오늘날에 이르렀다. 세월이 더해지며 은행나무 가로수는 2000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거리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고부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고, 우회도로를 개설한 2014년부터는 충청남도경제진흥원에서 현충사 사거리까지 약 1km구간이 차 없는 도로로 탈바꿈해 아산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은행나무길을 찾은 지난 10일 오후 가을비가 다소 고약하게 내렸다. 샛노란 빛깔이 한층 짙어지고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이 늦가을의 서정을 한껏 고조시켰지만, 쌓이는 낙엽만큼 아쉬움도 커졌다. 이 길의 가을은 이번 주를 고비로 끝이 날 것으로 보인다. 또 1년을 기다려야 보게 될 풍경이다. 최근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몰리자 주차장도 따로 설치했다. 길 찾기 앱에서 아산문화예술공작소를 치면 된다. 문화예술공작소는 책 놀이터와 전시 체험 공간, 카페를 갖추고 있다. 억새와 뒤늦게 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곡교천 둔치에는 목재 데크를 설치해 또 다른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다. 늦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면 길은 자연스럽게 현충사로 연결된다.

정겨움과 푸근함 가득 외암민속마을 산책

은행나무길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는 외암민속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마을로 약 500년 전 (안동)예안 이씨 일가가 정착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도 60여 가구 주민의 절반이 예안 이씨다.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여기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말하면 웅장한 산세에서 내려다 보는 넉넉한 물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외암마을의 산세는 위압적이지 않고,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은 특별할 것 없이 소박한 실개천이다. 거칠지 않은 설화산 능선에 포근히 안긴 마을의 형세는 누가 봐도 편안하고 아늑하다.

이끼 낀 돌담이 정겨운 외암민속마을 골목.

부드러운 산세에 폭 안긴 마을 풍경도 아늑하기 그지 없다.

초가와 기와집이 적당히 섞여 있는 마을 안길은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마을 한 가운데 600년 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가지처럼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 오래된 가옥이 타원형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지은 택호다. 길 양편으로는 이끼 낀 돌담이 감싸고 있어 정겨움을 더한다.

제주가 삼다도라면 외암마을은 삼다마을을 자처한다. 우선 돌이 많은 석다(石多) 마을이다. 이른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눈꽃이 아름답다는 뒤편 설화산은 돌무더기로 형성된 산이다. 집터를 닦고 논밭을 일구면서 나온 돌로 담장을 두른 것은 당연한 순서, 전체 돌담 길이는 5km가 넘는다. 또 외암마을은 양반이 많은 반다(班多)의 마을이다. 특히 조선후기에 급제생을 많이 배출했는데, 조선시대 생원ㆍ진사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으로 확인된 외암마을 출신이 11명이다. 퇴호 이정렬은 고종 때 참판까지 지냈다. 마을이 더 널리 알려진 것도 성리학자인 이간(1677~1727)의 덕이다. 그의 호가 바로 외암이기 때문이다. 양반이 많은 만큼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언다(言多)의 마을이기도 하다.

요즘은 초가지붕을 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을 가운데 600년 된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외암마을에서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설화산에서 내려온 물길을 집집마다 연결해 정원수나 방화수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설화산의 불기운을 잡기 위한 방편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외암마을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화재가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마을 입구의 논에는 지금 허수아비와 움집을 설치해 기념사진을 찍을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고, 마을에선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등도 보존하고 있다.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초가를 이는 작업도 요즈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을의 16가구가 민박과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외암민속마을은 대전당진고속도로 유구IC나 천안논산고속도로 남풍세IC에서 각각 20km거리다. 수도권전철1호선 온양온천역에서 시내버스(17~22번, 100번)를 이용하면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

아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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