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9 10:00

골목 끝은 지중해...카탈루냐 바람의 드라이브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중(56), 바르셀로나-마드리드 로드트립2

등록 : 2017.01.09 10:00

구르는 것은 차이고 일렁이는 건 여행자의 가슴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칼라세이테까지, 바람은 이곳 저곳으로 우릴 데려다 놓았다.

친절한 표지판 덕에, 도로에서 미아가 될 일은 없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서 빠져나간 차는 바르셀로나 외곽을 향하고 있었다. 바달로나(Badalona)다.

바달로나는 더워지기도 전에 여름을 부르는 휴양 도시다. 시체스보다 더 빠르게 비키니 수영이 가능한, 바르셀로나에서 10km 떨어진 외곽이다.

바달로나에 앞서 이곳이 속한 카탈루냐(Cataluña) 지방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카탈루냐는 프랑스와 피레네 산맥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바달로나가 속한 바르셀로나와 헤로나, 레디다, 타라고나주를 포괄한 역삼각형 지방이다. 이곳의 자부심은 소름 끼칠 정도다. 그럴 만도 하다. 토양은 비옥하고, 산업은 번성하며, 문화의 꽃은 풍성하다. 카탈루냐 언어와 문화가 존재한다. 10%밖에 안 되는 면적에서 20%에 가까운 국내 총생산(GDP)를 책임지니, 스페인을 먹여 살리는 가장인 셈이다. 그래서 늘 억울함을 호소한다. 언제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외쳤다. 카탈루냐 주지사는 올해 신년사에서 (위헌일 지라도) 분리 독립을 묻는 투표를 하겠다고 공표했다.

바달로나는 유난히 스페인보다 카탈루냐 지방임을 강조한다. 거리는 부유한 도시의 안락한 정취가 묻어났다. 정신 없는 바르셀로나의 시간도 여기선 느리게 흐른다.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바달로나 길의 막다른 골목은 바다다. 온화한 지중해가 길을 지워버린다. 본능적으로 낭만은 가득 충전되었다.

이 길의 막다른 골목은 바다다. 당신의 길은 무한대입니다.

5월이면 악마 인형을 태워 황홀경을 맞는 축제(Fiestas Sant Anastasi Badalona)로,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

바르셀로나가 아닌 바달로나에 짐을 푼 데엔 운명이 있었다. 길에서 만나 길에서 맺은 인연 때문이다. 탕탕의 실크로드 여행에서 만난 후안이다. 좁은 계단을 올라 집 문을 연 순간, 편백나무 향이 났다. 삐거덕 나무 바닥의 소리까지 음악 같던 그곳은 바달로나이자 곧 스페인이었다. 테이블을 가득 메운 환영 만찬 후 동네 주민 같은 산책이 이뤄졌다. 그는 이웃과의 인사로 수시로 걸음을 멈췄고, 와인숍은 그가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선별해주곤 했다. 서로의 욕실에 무엇이 있을 지까지 알 듯한 관계에 자주 미소를 지었다. 우린 눈 뜨면 상다리 부러질만한 푸짐한 아침을 먹고, 점심이면 슬슬 바르셀로나로 지하철(TMB)을 타고 마실 나갔다가 늦은 저녁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거듭했다. 게으른 직장인 같은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귀갓길은 늘 기쁨에 찼다. 오늘은 어떤 저녁이 준비될까. 잃었던 일상의 기쁨이었다. 기한이 있는 여행은 이럴 때 밉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괜찮다. 우린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집 구조와 주인의 행동거지와 음식문화로까지, 그 여행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품어버린다.

바달로나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은 마리나 산줄기(Serralada de Marina)를 병풍처럼 두르고, 가느다란 베소스 강(Besòs River)과 지중해의 길목에 안겨 있다. 마리나 산줄기는 내내 도로를 따라 다녔다. 해발은 낮다. 600m를 넘지 못한다. 여기서만큼은 고속도로도 무자비하지 않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닦은 길이라기보단 풍경에 몰입하기 위한 겸손한 길이다. 땅 위의 길은 늘 하늘의 길과 맞닿아 있었다. 마드리드로 가고 있었지만, 종착지가 어디일지 알 수 없었다. 클리셰 없는 로드 무비, 예측 불허한 미래가 우리 앞에 있었다.

바람이 곱게 빗어 내린 암벽 아래 마을 가르가요(Gargallo). 앞은 연두 바다다.

꼬부랑 할머니와 눈인사를 할 때면 늘 이런 집이 뒤에서 웃고 있었다.

‘사진빨’로는 최고인 마을, 비야르루엔고(Villarluengo). ‘여기 안 들리고 갈래?’ 라고 협박하는 풍경이다.

타라고나를 지나 본격적인 N-420 국도를 탔다. 국도에는 으리으리한 휴게소가 없기에 이동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원해서 간다는 자발성이 응축되어 있다. GPS 대신 풍경이 아라곤(Aragon) 지방에 들어섰음을 안내했다. 카탈루냐 지방과 아라곤 지방이 입맞춤하는 길목의 마타라냐(Matarraña) 지역이다. 하아, 이곳을 ‘스페인의 투스카니’라 했던가. 포도밭과 올리브 농장이 발에 밟힌다. 굽이굽이 강의 생명력을 머금은 명암 짙은 연두 바다의 평야가 곡예를 펼쳤다.

이 길에서 찾은 건 숨은 ‘집들의 숲’이다. 태양에 잘 구워진 마을은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거나 깊게 파인 웅덩이에 뚝 떨어진 비행선 같거나 절편처럼 쌓인 바위 위에 거성처럼 서 있다. 나무가 모여 깊은 숲이 되듯 집이 모여 사람 냄새 나는 마을이 되었다. 덕분에 멀미 나는 이 길에서 참 우유부단했다. 이쪽 마을을 보자니 저쪽 마을이 궁금하고, 그 다음 마을에 성급히 기대감을 갖게 했다. 창문 사이론 머리칼을 뒤섞는 바람이 치고 들어오는데 손엔 땀이 쥐어졌다. 결정장애였던 우린 동시에 고깔모자 모양의 마을에 꽂혔다. 핸들을 단호히 그곳으로 꺾였다. 칼라세이테였다.

지나치기 전에 나체로 자신을 소개하는 마을, 칼라세이테.

오르락내리락 고갯길을 따라 1,000여 명 주민이 생의 기복을 달리하는 칼라세이테.

창문은 주인의 마음을, 문은 마을의 습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칼라세이테는 촘촘하게 언덕에 둥지를 튼 마을이다. 햇빛에 잘 마른 황토색 키 높이의 벽이 마중을 나왔다. 틈새 같던 길을 따라 오르는 동시에 마을은 도망치듯 멀어져 갔다. 언덕의 힘이다. 선사시대부터 역사가 시작된 마을은 21세기 여행자를 부산스럽게 흔들어놓는다. 오르락내리락 들쭉날쭉, 골목과 골목이 만나는 길엔 셔츠 자락이 펄럭였다. 목표 없는 산책은 언제나 성스러운 법. 마을의 끝으로 마타라냐 지역이 펼쳐진다. 그간 우리가 달려온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칼라세이테는 관조하고 있었다.

명암과 채도의 디테일이 다른 연두 빛 마타라냐(Matarraña) 지역.

칼라세이테의 라 칸토나다 바. 문을 열자마자 포커 치던 사내들의 시선이 꽂혔다. 우린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밥 먹을까?”

우린 그렇게 이곳에서 좀 더 머물 핑계를 찾고 있었다. 허기지는 풍경이 스미고,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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