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 기자

등록 : 2018.02.27 04:40
수정 : 2018.02.27 10:05

개그계 ‘안경 선배’ 송은이 배려가 예능대세 키웠다


등록 : 2018.02.27 04:40
수정 : 2018.02.27 10:05

#후배들 장점 허투루 넘기지 않고

걸크러쉬 김숙ㆍ그뤠잇 김생민 등 탄생

신뢰 바탕으로 숨은 리더십 발휘

개그우먼 송은이(왼쪽)와 김숙, 김생민이 지난 24일 열린 ‘김생민의 영수증’ 촬영현장 공개회에서 참석해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KBS 제공

“송은이가 드디어 떴습니다. 하하.”(개그우먼 김숙)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 KBS별관. KBS 예능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 시즌2 녹화 현장에서 김숙의 생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숙의 발언처럼 개그우먼 송은이는 요즘 방송가의 ‘숨은 대세’다. 방송진행자로, 가수로, 기획자로 활동하며 눈에 띄는 성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1993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가 25년 방송 생활 동안 가장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송은이는 예전부터 동료들로부터 아이디어 뱅크라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활약상은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그의 기획력은 ‘김생민의 영수증’에서 도드라졌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애초 송은이가 김숙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작은 코너로 만들어졌다. 이후 유행어 ‘스튜핏’과 ‘그뤠잇’를 만들어내며 지상파 방송에까지 진출했고 방송인 김생민에게 생애 최고의 인기를 안겨줬다.

‘김생민의 영수증’의 깜짝 성공기 뒤에는 후배들이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송은이의 배려가 있었다. ‘김생민의 영수증’ 녹화 모습을 지켜보며 송은이의 숨은 리더십을 찾아봤다.

KBS2 예능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은 개그우먼 송은이와 김숙이 진행한 온라인 방송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시작했다. KBS 제공

‘독설개그’ 밀어내고 ‘배려 예능’ 대세 주도

“아이고, 많이 추우시죠? 녹화 보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촬영을 시작하기 전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송은이가 기자를 살뜰히 챙겼다. 코너 ‘연예인 영수증’ 녹화를 앞두고 한창 준비 중인 초대손님에게 다가가 말을 걸며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가겠습니다!” 송은이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녹화가 시작됐다. 그는 초대손님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호응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김생민의 말을 풍성하게 살렸다. 출연자의 영수증을 분석하고 진단을 내리는 건 방송인 김생민이었지만, 송은이는 초대손님과 고정 출연자를 아울렀다. 누군가에게 면박을 주며 자신만을 돋보이게 하는 ‘독설 개그’는 멀리하고, 재치 있는 발언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출연자와 오랜 기간 알고 지내면서 쌓은 신뢰와 믿음도 송은이 리더십의 주요 요소다. 김숙은 “평소에 후배들의 말을 허투루 듣는 법이 없이 가볍게 던진 말도 늘 잘 새겨놓고 있다가 방송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한다”고 말했다. 김생민은 “만약 누님(송은이)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같이 하자’고 한다면, 그 말에는 그동안 함께 한 세월이 다 들어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송은이의 성격도 ‘착한 예능’을 만들고 성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 씀씀이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코너 ‘출장 영수증’에서도 배려심이 돋보인다. 촬영을 할 때 아무리 후배라도 집 안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고 일일이 “살펴봐도 되겠냐”고 묻고 허락을 구해 상황을 매끄럽게 풀어간다. ‘김생민의 영수증’의 안상은 PD는 “평소 동료와 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터워 그런 부분이 방송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안 PD는 “콘텐츠 제작사 ‘컨텐츠랩 비보’를 꾸리고 있어서인지 방송 장비도 잘 다뤄 스스로 앵글을 맞추는 등 현장을 적극적으로 끌어간다”고도 했다.

개그우먼 송은이가 지난 24일 열린 ‘김생민의 영수증’ 촬영현장 공개회에서 참석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BS 제공

개그계의 ‘안경선배’, 기획자로 성장하다

오래 전부터 송은이는 후배들을 모으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걸 좋아했다. 자신의 성공보다 후배들의 길을 닦아주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 김숙은 “개그계의 ‘안경선배’”라고 그의 성격을 정리했다. “(송은이가) 뭔가 거창하게 준비하는 게 아니에요. 평소 후배들과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기획들이거든요.”

송은이가 후배 개그우먼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 김신영과 결성한 걸그룹 셀럽파이브도 자신이 제작한 웹예능 ‘판벌려’에서 구상됐다. 셀럽파이브는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초대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셀럽파이브는 반응이 좋아 기한을 정하지 않고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김생민의 영수증’ 시즌2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도 많다. 아이돌 가수가 버는 돈을 잘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소속사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상황에 놓인 의뢰인들의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송은이는 “무언가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기획에 나선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료들과 함께 지내며 형성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도 김숙이 갑작스러운 방송 하차 통보로 절망할 때 “절대 잘리지 않는 방송을 해보자”고 응원하며 시작했다.

송은이의 재기 넘치는 행보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능력 있는 개그맨이 많은데 창구는 점점 줄어들어 안타까운 마음에 (온라인 콘텐츠 제작에)나서게 됐다”며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웃음을 드리고 (개그맨들도)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 후배들과 머리를 맞대고 기획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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