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7.11.28 17:50
수정 : 2017.11.28 21:00

거리 곳곳 한복 물결…전주 한옥마을 시간여행


오목대ㆍ이목대는 조선왕조 뿌리...경기전ㆍ전동성당은 사진 찍기 핫플레이스

등록 : 2017.11.28 17:50
수정 : 2017.11.28 21:00

오목대 둘레길에서 내려다 본 전주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모습. 지난 24일 오전 흩뿌리듯 눈이 내려 기와지붕 곡선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전주=최흥수기자

전주에 도착할 때만 해도 굵은 눈발이 흩날렸다. 마음이 설레고 바빠졌다. 눈 쌓인 한옥지붕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먼저 한옥마을에서 가장 높은 L호텔로 갔지만, 옥상 출입을 거절당했다. 이런 요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바로 옆 테라스를 갖춘 5층 커피숍으로 바쁘게 이동했다. 한옥마을 전경이 바로 내려다보였지만 첫눈의 잔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와 골 사이로 희끗희끗하게 남은 눈은 오후 햇살에 곧 낙수가 되어 흘러내렸다. 한옥마을 전망을 보겠다고 높은 빌딩을 찾은 것도, 한번에 끝장을 보겠다고 서두른 것도 애초부터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한옥마을 제대로 보려면 오목대ㆍ이목대로 가라

대신 전주시에서 추천한 곳은 오목대(梧木臺)였다. 오목대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1380년(고려 우왕 6년)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토벌하고 돌아가던 길에 전주 이씨 종친들과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대(臺)는 보통 흙이나 돌을 높이 쌓아 올려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전망 좋은 곳이니 오목대도 높은 지대일 것으로 생각하면 틀렸다. 높이나 면적이 동네 뒷산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신 풍경만큼은 넉넉하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한옥마을의 형세를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전주천과 한옥마을 경치가 고스란히 오목대로 집중되는 위치다.

눈 쌓인 기와지붕 사이로 따지 않고 남겨 둔 빨간 감이 한옥마을의 멋과 여유를 보여준다.

오목대 언덕 위의 비각과 누대.

오목대 둘레길은 짧지만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지난 24일까지도 빨간 단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선 기린대로 쪽에서 오른편으로 돌면 풍남동과 교동의 소담스런 한옥마을 지붕이 가지런히 펼쳐진다.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정도여서 마당과 골목은 보이지 않고, 직선과 곡선이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한옥 지붕만 편안하게 이어진다. 길은 오목대를 가운데 두고 작은 동산을 따라 한 바퀴 이어진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둘레길에서 누대와 비석이 있는 꼭대기까지는 서너 갈래에서 계단으로 연결된다. 비석에는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고 새겨져 있는데, 대한제국 광무4년(1900)에 고종이 쓴 친필이다.

오목대 옆에는 비슷한 규모의 작은 언덕이 또 하나 있다. 누대와 비석이 없을 뿐 산책로를 내고 공원처럼 꾸민 모습은 오목대와 다를 바 없다. 단풍과 대숲이 우거져 걷는 맛은 오히려 낫다. 이곳에서는 전주향교가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전주향교는 온전한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향교로 꼽힌다. 정문 역할을 하는 만화루에서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ㆍ서재 사이 마당에는 수령 400년에 가까운 은행나무 5그루가 위엄을 더한다. 전주향교는 애초에 풍남동에 세웠다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들어선 후 글 읽는 소리에 영령이 편히 쉴 수 없다는 이유로 세종23년(1441) 현재의 신흥중학교 자리로 옮겼고, 읍성에서 멀고 전주천을 건너 다니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선조36년(1603)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는 곡절을 겪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향교의 역사와 함께한 셈이다.

앞마당은 향교의 역사와 함께 한 400년 가까운 은행나무가 지키고 있다.

발갛게 익은 전주향교의 산수유 열매.

향교 입구에서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향교 앞길은 관광객이 많지 않아 한옥마을을 걷는 맛은 오히려 낫다.

향교에서 전주천을 거슬러 조금만 오르면 가파른 언덕에 멋들어진 누각이 올라앉았다. 한벽당(寒碧堂)이다. 전주천을 흐르는 푸른 물이 바위에 부딪힐 때면 하얗게 부서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한 이름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인 최담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천 물빛은 지금도 그대로지만 주변지형이 변하면서 한벽당 전망은 옛모습을 많이 잃었다. 바로 앞을 지나는 왕복 4차선 교량이 푸른 물빛을 가렸고, 차량 소음에 고즈넉함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한벽당이 이렇게 옹색해진 것은 일제강점기에 바로 뒤편으로 철길이 나면서부터다. 승암산 자락 자만동에서 오목대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이때부터 맥이 끊기고 현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딴 동네가 되고 말았다.

한벽당은 변함없지만, 바로 앞 4차선 교량이 전주천을 가리고 있다.

한벽당 뒤편 전라선 터널.

자만 벽화마을의 ‘꾸지따뽕 카페’ 외벽.

자만 벽화마을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경쾌하다.

자만동금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조상이 살던 동네라는 표시다.

한벽당 뒤편에서 전라선 터널로 이용하던 한벽굴을 통과해 오른쪽 언덕을 오르면 자만동이다. 전주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이곳은 현재 ‘자만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어려운 시절을 되새기는 ‘추억팔이형’ 그림보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경쾌하고 발랄한 그림 위주로 장식했다. 벽화마을의 모태인 ‘꾸지따봉 카페’는 특히 노랑ㆍ빨강ㆍ파랑 등 화려한 원색 외벽으로 이목을 끈다. ‘꼬질꼬질하다’쯤 되는 전라도말 ‘꾸지다’를 사용해 달동네를 변화시키는 재치를 발휘했다.

마을 중간 길모퉁이에 놓인 ‘자만동금표(滋滿洞禁標)’는 이 동네의 역사를 알려주는 표석이다. 금표는 말 그대로 일반의 출입을 통제하는 표식으로 1900년경 고종이 이 일대를 성역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자만동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 이안사(李安社)가 살았던 곳으로 인근 이목대(梨穆臺)에는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 비가 세워져 있다. 이목대와 오목대를 분리한 찻길 위로는 고가 인도를 놓아 간신히 연결돼 있다.

한옥마을의 핫플레이스 경기전과 전동성당

전주 한옥마을에서 핫플레이스는 단연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다. 한복을 차려 입고 거리 곳곳을 누비는 여행객들이 또 볼거리여서 시간을 한 세기 이상 거슬러 올라간 분위기다. ‘셀카봉’을 들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주를 이루지만,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30~40대와 가장 한국적인 체험 대열에 합류한 외국인도 많이 보인다.

전동성당은 한복입고 사진 찍기 핫플레이스.

아쉽게도 성당 내부는 들어갈 수 없다.

경기전 담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외국인들도 한복입고 사진 찍기 대열에 빠지지 않는다.

전동성당과 경기전은 전주성의 남문 역할을 하는 풍남문에서 오목대로 이어지는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건물이다. 1908년 건축을 시작해 1914년 외형공사를 마쳤고 1931년에야 축성식을 가졌으니, 완공에 23년이 걸렸다. 건축 과정에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현장인 전주성 남문 밖 성벽의 돌을 사용해 역사적 의미까지 더했다. 외형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지만, 오래된 벽돌건물의 품위로 주변과 잘 녹아든 모습이다. 현재 성당 내부는 들어갈 수 없고 관광객은 주로 앞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경기전 기와기붕 너머로 전동성당 첨탑이 보인다.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다.

맞은편 경기전(慶基殿)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으로, 명실공히 전주가 조선의 고향임을 알리는 시설이다. 태종10년(1410)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고,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광해군6년(1614)에 중건했다. 경기전 정전, 조경묘, 전주사고, 어진박물관 등의 건축물 사이로 대나무 숲길과 고목이 많아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특히 전각 사이 낮은 담장은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인증샷’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경기전 뒤편 어진박물관에서 보면 기와 담장 너머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곡선미를 자랑하는 전동성당 첨탑이 솟아올라 동서양의 전통과 기품이 조화롭다.

전주=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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