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등록 : 2016.12.30 11:00
수정 : 2016.12.30 11:00

[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스포츠


등록 : 2016.12.30 11:00
수정 : 2016.12.30 11:00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로드바이크 선수인 피터 사간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TV로 사이클 경기 안 봐요. 너무 지루해서요.” 2013년에 그가 한국에 왔을 당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사간은 사이클 레이스의 마지막 3㎞만 흥미진진할 뿐 나머지 모든 시간이 지루하다고 말했다. 인류 최강의 자전거 선수들이 3,500㎞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질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는 월드컵, F1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그런데 너무 지루해서 안 본다고? 에이 설마.

피터 사간은 "전 지루해서 TV로 사이클 안 봐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사간 선수의 단언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 경기, 특히 로드바이크 레이스는 정말 ‘노잼’이다. 그리고 이건 피터 사간이나 내가 별나게 집중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세계의 많은 사이클 동호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경력이 제법 되는 동호인에게도 지루하니 문외한에겐 말할 것도 없다. 해외 온라인 포럼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이클 경기의 ‘노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영국 사람들은 특유의 냉소적인 화법으로 사이클이 얼마나 따분한 스포츠인지에 대해 독설을 뿜어낸다. 영국인들이 옳다. 로드바이크 경기는 실제로 지루하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로드바이크 레이스는 경기 시간 자체가 긴데다 대부분 시간 동안 긴장감이 없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스테이지도 최소 100㎞ 이상, 두 시간 이상의 레이스다. 길어지면 3, 4시간까지 간다. 아주 특이한 코스가 아니면 경기 초반 승부수를 띄워 전력질주하는 경우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사이클은 딱 잘라 말하면 바람, 즉 공기저항과의 싸움이다(업힐 코스는 중력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함께 달리는 집단이 커질수록 한 사람이 바람에 맞서 소모하는 에너지는 줄어든다. 몇몇이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봤자 뒤에서 거대한 무리(“펠로톤”이라 부르는)가 힘을 온존하며 차츰 추적해오면 따라잡히고 만다. 물론 끝까지 잡히지 않고 달아나면 되는데 말처럼 쉽진 않다. 쫓아가는 펠로톤은 체력소모가 적은 반면 앞서 달리는 집단(“브레이크 어웨이 그룹”)은 소규모라 금방 스태미나가 깎여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승부수가 던져지는 시점은 ‘최후의 최후의 최후’인 경우가 많다. 바로 피터 사간이 말한 “마지막 3㎞”다. 그때까지 펠로톤에 살아남은 강자들은 본격적으로 힘싸움을 시작하고 라이벌의 상태를 체크해보는 수싸움도 잦아진다. 이 부분이 프로 사이클 레이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보는 사이클'은 따분하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본다면 전체 코스가 150㎞라 치면 그중 147㎞ 동안은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동호인 레벨에서 보기엔 말도 안 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고는 있지만 사실 앞의 147㎞는 마지막 3㎞의 예비단계 같은 것이다. 코스가 지나치게 길다든가 하는 경우 선수들끼리 합의해 길 중간에서 같이 소변을 보기도 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합의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레이스인만큼 ‘소변 합의’를 무시하고 혼자 달려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리고 그 선수는 나중에 반드시 펠로톤에 ‘보복’ 당한다.) 어쨌든 경기가 이런 식이다보니 관전하는 입장에선 따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중계와 해설을 재미있게 해도 한계가 또렷하다.

TV로 보는 것 말고, 직접 현장에 가면 다를까? 글쎄, 어떤 이에겐 외려 더 실망스러울 수 있다. 경기가 열리는 코스의 어느 지점에 서 있어도 선수들이 그곳을 통과하는 건 순식간이다. 너무 빨라서 누가 누군지 식별조차 쉽지 않다. 기껏 돈과 시간을 들여 프로 선수들의 레이스를 보러 갔는데 ‘약 3초 정도’ 선수들을 볼 수 있다면 허망한 일이다. 적어도 관전자 입장에서 사이클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스포츠가 맞다. ‘보는 스포츠’로서의 호소력이 여타 인기 스포츠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관심도에 비해 사이클 레이스에 광고 스폰서가 별로 붙지 않고 늘 재정난에 허덕이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레이스 중계는 이 물건으로 한층 진화할 수 있다.

로드바이크를 직접 타는 건 많은 이에게 꽤나 흥분되는 경험이다. ‘가장 빠른 자전거’가 주는 쾌감은 중독적이고 매혹적이다. 최근의 로드바이크 유행과 관련 산업의 급성장은 ‘하는 스포츠’로서 매력이 상당함을 방증한다. 그에 비해 ‘보는 스포츠’로서의 매력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어서, 올 여름 열린 2016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부터 몇 가지 중요한 실험이 시도됐다. 그 중 주목해야 할 게 ‘사이클 중계의 데이터화’다. 모든 참가 선수의 안장 아래에 특수하게 제작된 송신기가 부착되었다. 기존 중계에선 단순히 주요 그룹의 속도나 남은 거리 등이 나올 뿐이었지만, 이제는 개별 선수의 현 위치나 속도, 현재 경사도 등이 실시간으로 중계 가능하게 되었다. 앞으로 데이터화가 정착되면 전문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쉬워지고, 팬들은 지금까지보다 더 재미있게 관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방법을 써도 사이클이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재미를 줄 수는 없다. 마라톤이 100m 달리기가 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로드바이크가 ‘보는 스포츠’로서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로드바이크의 즐거움 중 하나일 게다.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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