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흥수 기자

등록 : 2017.06.13 17:21
수정 : 2017.06.13 17:21

꽃보다 편백, 에어컨보다 박물관…보령 휴식처 성주산


자연휴양림, 예술공원, 석탄박물관 등 산자락마다 볼거리 가득

등록 : 2017.06.13 17:21
수정 : 2017.06.13 17:21

보령이 충청지역 최대 탄광지역이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차령산맥 끝자락 성주산 일대에는 1990년대 초까지 영보, 원풍, 태화, 대보 등 수많은 광산업체가 밀집해 있었다.

지금은 성주면소재지의 이름 모를 건물 외벽에 환하게 웃는 광부 조형물만 옛 영화를 기억할 뿐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2~3km 안에는 바다와는 다른 보령의 또 다른 매력이 숨어 있다.

성주산자연휴양림의 편백나무 숲, 규모에 비해 그늘이 넉넉하다.

꽃보다 편백나무, 성주산자연휴양림

보령 시내에서 옥마산을 관통하는 성주터널을 지나면 같은 지역이라도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해수욕장의 달뜬 기분은 간데없고 속세와 단절된 듯 고요하고 차분하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성주산자연휴양림은 대천 바다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아늑한 휴식처다.

성주면 소재지 한 건물에 광부의 모습이 장식돼 있다.

성주산자연휴양림 산책로.

편백 숲과 돌탑. 성주산은 성인의 터라는 의미다.

10분만 걸으면 편백 숲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성인의 땅이라는 뜻의 성주산(聖住山)은 높이(680m)에 비해 품이 넓다. 휴양림 입구 이정표에는 ‘화장골’이라는 표시가 함께 있다. 한글로만 써 있어 으스스한 장례의식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는 ‘꽃을 감춘(花藏) 골짜기’라는 아름다운 지명이다. 차령산맥이 품은 모란꽃 형태의 7개 명당자리 중 하나라는 뜻이다. ‘가며 가며 길 트인 깊은 성주산, 구름 안개 겹겹이 쌓여 있는 곳, 모란줄기 어디에 꺾여진 건가, 푸른 산 첩첩이 물 천 번 도네.’ 휴양관 앞에는 신라말기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의 시비를 자랑스럽게 세워 놓았다.

그러나 성주산휴양림의 진짜 자랑거리는 꽃이 아닌 편백나무 숲이다. 남부지역에 잘 자라는 편백이 숲을 이룬 곳으로는 최북단이다. ‘숲속의 집’ 뒤편 언덕을 빼곡하게 메운 편백 숲에 들면, 한낮 볕도 맥을 추지 못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곳곳에 마련해 놓은 평상이나 벤치에 누우면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듯해 몸도 맘도 저절로 상쾌하다. 휴양관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10여분만 걸으면 편백 숲에 닿는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바위가 예술을 만났을 때, 개화예술공원

성주산자연휴양림 아래쪽 산기슭에는 개성 넘치게 꾸민 개화예술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선 공원입구에 말을 탄 선비와 서양인을 조각한 석상부터 독특한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살짝 미궁에 빠진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은 전부 다 새긴 듯한 시비가 길 양편으로 늘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 10m는 넘을 거대한 바위 조각이 이질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개화예술공원 중앙에 자리잡은 러시아 작가의 거대 조각상.

아이들과 소풍을 즐길 장소로도 적당하다.

소형 온실 안에 만든 민물고기 전시관.

바로 앞에서 금붕어가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라이플라워 향기 짙은 그림 ‘허브랜드’.

공원의 성격은 오랫동안 석재산업을 일궈온 임항렬 대표의 취향에서 비롯한다. “(돌을 만지는 사람이지만) 제가 시를 좋아해 지금도 50수는 읊습니다. 애초 시 공원으로 구상했다가 예술공원으로 방향을 틀었죠.” 공원 조성 방식도 독특하다. “한 10년 예술가들과 작업하다 보니 저도 눈이 좀 트였습니다. 처음에 제 손으로 다듬은 많은 시비들이 요즘은 부끄럽게 보여, 상당수는 철거할 예정입니다.” 빈자리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채워 나간다. 전뢰진, 강관욱, 송근배 등 한국의 대표 조각가뿐만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조지아 등 해외 유명작가도 초청해 최고 100톤에 이르는 석재를 제공하고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3년 후에는 ‘한국 100인 문학관’을 완공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1,500평 규모의 석재건물 2동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형식이다. 현재 공원에는 그의 손을 거친 시비 400여개와 조각가들의 작품 100여점이 들어서 있다.

임 대표가 이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전세계에서 보령에만 있다는 검은 돌, 오석(흑사암)의 가치 때문이다. 오석은 섬세한 조각과 글을 새기는 재료로 으뜸이다. 화강석에 새긴 글은 몇 백 년이면 뭉개지는데, 오석은 몇 천 년은 거뜬하게 유지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인근 성주사지의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는 1,20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비문이 선명하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렇다고 개화예술공원에 돌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온갖 드라이플라워와 방향 제품으로 장식한 허브랜드는 언제나 향긋하고 화사해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온실 안 실개천에 금붕어가 헤엄치는 ‘민물고기관’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원이다. 이외에도 연못산책로, 모산미술관, 들꽃시비산책로 등을 모두 돌아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에어컨보다 시원한 보령석탄박물관

개화예술공원 인근에는 전국 최초의 석탄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1994년 심원탄광이 마지막으로 폐광한 후 이듬해 문을 열었다.

보령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석탄박물관을 만든 지역이다.

채탄작업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 내부.

갱도와 연결된 냉풍터널은 여름 피서지로 그만이다.

석탄의 생성과 광산개발 역사, 채취 현장 등 기본 정보를 제공하는 전시물은 솔직히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설은 실제 갱도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출구다. 갱도로 안내하는 엘리베이터는 지하 400m를 내려가는 것처럼 층수가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1개 층을 내려간다. 출구 엘리베이터는 이동이 전혀 없이 조명과 음향 효과만으로 다시 400m를 올라오는 것처럼 만들었다. 착각을 이용한 체험시설이다.

지난해 8월에는 갱도전시실과 냉풍터널에서 ‘황금박쥐’로 널리 알려진 붉은박쥐 3마리가 발견돼 흥미를 끌었다. 냉풍터널과 연결된 폐갱도를 통해 들어 온 것으로 추정하는데,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갱도는 박쥐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박물관을 방문한 지난 9일 바깥 기온은 26도를 넘었지만 갱도의 온도계는 1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실제로 갱도에서 나오는 냉풍 덕에 보령석탄박물관은 에어컨을 켜지 않는데도 냉방을 하는 건물보다 훨씬 시원하다. 박물관이 피서지다.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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