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김주영 기자

등록 : 2017.12.28 04:40

노포 떠난 자리에 ‘폐업정리’ 점포… 다시 가 본 그곳

[View&]인사동ㆍ둔촌주공ㆍ홍대입구역 무엇이 변했나

인사동 상권 위축… 주변 상인들 불안감 커져

강남 재건축, 쓰레기 줄었지만 이주 늘어 적막

홍대역 청소노동자 아직도 진정한 휴식 못 가져

[12월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고(古) 시계점 ‘용정콜렉션’이 있던 자리에 캐주얼 의류를 판매하는 임시 점포가 들어서 있다. 흔적처럼 남아 있는 52년 노포의 빛 바랜 간판과 ‘폐업정리’ 안내문의 대조가 묘하다. 용정콜렉션은 임대료 상승 등 지나친 상업화 현상을 피해 지난 9월 19일 인사동을 떠났다.

[9월 12일] ‘용정콜렉션’이 인사동을 떠나기 일주일 전 모습.

[9월 13일] 인사동에서 30년을 이어 온 ‘송림당필방’은 지난 9월 30일 폐업했다.

[12월 20일] ‘송림당필방’이 떠난 자리에 한글 캘리그라피를 응용한 공예점이 들어서 있다. 전통과 무관한 업종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인사동 거리에서 이곳은 그나마 전통의 명맥을 잇는 곳이다.

2017년 ‘View&(뷰엔)’이 전한 세상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수개월 전 미세먼지 가득한 지하철 승강장에서 누군가는 쉬고 자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탈출이 이어진 강남 재건축단지는 버려진 쓰레기와 양심의 무덤으로 전락했고, ‘전통문화의 공간’ 인사동에선 상업화에 밀려나는 터줏대감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그사이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가 본 그곳에 대한 이야기다.

#1 상업화에 밀려 역사 사라지는 인사동(9월 14일 보도)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나름 힘들게 장사하고 있는데 저렇게 전통과 아무 상관 없는 업종이 들어오는 걸 보면 힘이 빠진다. 나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40년째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김신선(75)씨가 26일 길 건너 캐주얼 의류 점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고(古) 시계점 ‘용정콜렉션’이 지키고 있던 자리다. 상업화 물결에 밀려 52년 노포(老鋪)가 떠난 지 한 달도 안 돼 들어선 이 임시 점포엔 고객을 끌기 위한 ‘폐업정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3개월여 만에 다시 찾은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국적불명의 액세서리와 기념품, 의류점이 즐비했다. 고색창연한 노포 간판 아래 진열된 원색의 후드 집업과 니트셔츠마저도 익숙한 인사동 풍경의 일부가 돼 있었다. ‘용정콜렉션’과 ‘송림당필방’이 떠난 후 주변 상인들의 연쇄적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익명을 요구한 나전칠기 전문점 대표는 “나 역시 건물주가 임대료 올리면 바로 나가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여기에 더해 사드(THADD) 보복 영향으로 위축된 상권마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상인은 “연말 대목인데도 손님 대다수가 구경만 하고 갈 뿐”이라고 했다. 정용호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은 “여러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역사가 사라지는 이곳의 현실은 3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라고 전했다.

'역사 사라지는 인사동(9월 14일)' 기사 보기

[8월 27일] 재건축을 앞두고 이주가 한창이던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 조경 등 관리가 되지 않아 현관 주변에 잡초가 수풀처럼 우거져 있었다.

[12월 21일] 이주율이 93%에 달한 둔촌 주공 아파트 현관에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8월 27일] 단지 내 곳곳에 이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쌓여 있는 둔촌 주공 아파트.

[12월 21일] 이주가 완료된 동과 주차장에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다.

[12월 21일] 어둠이 내린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아파트 건물에서 불 켜진 가구를 찾아볼 수 없다. 재건축을 앞둔 이곳의 이주율은 현재 93%로, 한 동에 한 두 가구 정도만 남아 있을 뿐 주민 대다수가 단지를 떠났다.

#2 쓰레기장 된 강남 재건축 단지(8월 31일 보도)

한국일보 ‘View&(뷰엔)’팀은 21일 재건축 절차가 진행 중인 강동구 둔촌 주공 아파트를 다시 찾았다. 이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몸살을 앓던 지난 8월 이후 약 4개월 만이다. 대다수 주민들이 단지를 떠나서인지 주차장과 화단 등에 넘쳐 나던 쓰레기는 현격히 줄어 있었다. 경비실 유리창에 붙은 경고문은 쓰레기 때문에 골치를 썩은 그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다가 쓰레기 됩니다’

'쓰레기장 된 강남재건축 단지(8월 31일)' 기사 보기

지난 8월 당시 33%이던 이주율은 27일 기준 93%로, 전체 5,930세대 중 500여세대만 남았다. 이주가 완료된 몇몇 동과 주차장엔 아예 ‘진입금지’ 표시가 돼 있고 썰렁한 단지 내 도로 위로 이삿짐 트럭만 간간이 오갔다. 을씨년스러움이 더해 갈수록 이주율 수치는 차곡차곡 늘어갔다. 조합은 남은 주민들의 이주 계획 확정 여부를 매일 확인하고 신속한 이주를 설득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내년 1월 19일 이주가 종료되자마자 미 이주자에 대해 명도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제퇴거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월 26일] 전동차 내부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승강장 위 비좁은 부스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다.

[12월 26일] 7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같은 곳에서 쉬고 자고 일하는 환경미화원들. 회사가 지급한 마스크를 쓴 채 근무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3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청소노동자들(6월 1일 보도)

지난 5월 26일 전동차 내부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승강장의 좁고 낡은 부스 안에서 쉬고 있었다. 승강장에서 발생한 소음과 미세먼지 등에 고스란히 노출된 이들의 휴식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었다. 숙직실 역시 승강장 옆인데다 업무 공간마저 전동차 내부인 이들에게 신선한 공기는 퇴근 후에야 허락됐다.

그로부터 7개월 후 그들은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쉬고 잠을 잔다. 한 환경미화원은 26일 “예산 때문에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데 높은 분들 의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문제 아닌가”라고 했다. 일부 승객의 불쾌한 시선 역시 변치 않는 어려움 중 하나다. 또 다른 환경미화원은 “쓰레받기랑 빗자루 들고 지나가면 몸을 피하거나 심지어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인격모독 수준의 일을 겪고 나면 힘이 쭉 빠진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의 휴식(6월 1일) 기사 보기

보도 후 개선된 점도 있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숙직실에 공기청정기를 1대 설치했고 환경미화원 1인당 월 10장의 1회용 마스크를 지급하고 있다. 승강장 부스 앞에서 작은 온열기도 1대 가동 중이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찬바람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다. 낮은 임금, 고용불안은 둘째 치고 열악한 근로환경마저 벗어나지 못하는 환경미화원의 현실은 아직 그대로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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