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지왕’ 을 기억하십니까?”1996년 12월, 가장 전통적인 한국영화를 지향한다는 태흥영화사가 그야말로 희한한 영화 한 편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낯선’ 구성과 이야기 방식에 황당해 했다. 결과는 흥행 참패.관객은 이 해괴한 코미디를 철저히 외면했고, 짐 캐리 같은 조상기란 별난 신인 배우를 비웃었다.
왕창한 군(조성기)과 엄청난 양(김현희)의 결혼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어이없는 해프닝. 특정한 사건을 따라가지 않았고, 시공간을 멋대로 드나들고, 엉뚱하고 키치적(촌스런)인 발상을 서슴없이 드러내면서 자연스런 웃음조차 막아버려 관객을 조롱하는 듯한 영화. 비평가들은 “한 신인 감독의 뻔뻔하고 배짱 좋은 장난” 이라고 비웃었다.
‘미지왕’ 은 그렇게 한낱 ‘해프닝’으로 끝났고, 영화와 함께 감독 김용태(38)도 잊혀졌다.누구도 치기 어리고 서툴지만, 그의 독특한 개성과 상상력과 실험성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김용태 감독은 그때 이렇게 회상했다. “익숙한것에 대해 점검해 보고 싶었다. 관습적인 것에는 공감하면서, 낯선 것은 싫어하는지.
관객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도발과 돌발과 불친절로 그것을 깨고 싶었다. 단순한 치기가 아니었다” 고.
그러나 그런 생각과 도전은 본질과 상관없이 흥행 실패에 묻혀 ‘실패’ 로 끝나고 충무로는 그를 더 이상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래서김용태 감독이 5년 만에 ‘언더 커버’ (10월부터 촬영)로돌아온다는 소식이 더욱 반갑다. 물론 그도 타협했다.
‘언더 커버’ 는 마약조직에 잡입한 형사가 벌이는 액션이고, 원빈이란 스타를 선택했다. 제작비도 30억 원. ‘미지왕’ 과 달리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로우면서도 친절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기존관습을 답습하고 싶지 않다” 는 소신에서 분명 한 걸음 물러섰다. 감독은 이를 깔끔하고 세련된 옷을 잠깐 바꿔 입은 것에비유했다. “반 보만 앞서 가겠다.”
‘기막힌사내’로 시작한 장진도, ‘3인조’의 박찬욱도 그랬다. ‘플란다스의 개’ 의 봉준호도, ‘죽거나혹은 나쁘거나’ 의 류승완도 그럴 것이다.
‘흥행이 곧 성공’ 인 충무로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다. 독특한 B급 영화세계를 갖고 있는 박찬욱 감독에게 철저히 기획된 ‘공동경비구역JSA’ 의 성공은 그 자신에게도 성공일까.
우리 영화에도 별난 감독, 별난 제작자, 별난 관객이 필요하다. 영화의 미래와 생명력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