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예외 없이 그의 소설이 있다.” 서양인들이 하는 얘기다. 작은 거인 덩샤오핑은 “나도 당신 책을 읽었으니 우리는 친구”라고 했다. 그의 전집을 30번 읽었다는 상하이의 문학평론가는 단 8자로 이렇게 평했다. “東西古今空前絶後(동서고금공전절후ㆍ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이런 작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초가 좀 들어간 얘기이긴 하지만 다 ‘소설 영웅문’의 작가 김용(金庸ㆍ중국 표준어 발음은‘진용’, 광둥어 발음은 ‘캄융’이고 본인은 영어명 ‘루이스 차’를 많이 쓴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무협소설의 살아 있는 전설의 나이 벌써 81세. 그런 노대가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해서 중국 언론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그는 6월에 케임브리지대학으로 가서 고고학과 세계사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특히 22일에는 이 대학에서 주는 명예 문학박사 학위도 받는다. 그의 작품 ‘녹정기(鹿鼎記)’를 읽고 열렬한 팬이 된 이 대학 총장이 적극 주선했다는 후문이다. 얼마나 머물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용은 홍콩 신문 대공보와 인터뷰에서 유학 가는 이유에 대해 “아직 학문이 부족하고 공부를 더 하면 지금보다 좀 나아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좀 다른 데 있다. 필생의 과업으로 그 동안 자료 준비를 해 왔던 ‘중국통사’를 케임브리지에서 쓰려는 것이다. 그는 작년 4월 고향인 저장성 저장대 강연에서 집필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구어체와 소설체를 겸할 테니 독자들께서는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세 가지 서술 원칙도 정해 놓았다. “우선 기술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꿉니다.
중국 역사책들이 고어체로 돼 있는데 젊은 세대가 쉽게 읽도록 지금 말투로 바꾸겠다는 것이지요. 특히 통치자가 아닌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와 인물을 기록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5,000년 중국 문명은 엄청난 동력을 생성하는 민족 융합의 역사입니다. 이 점을 강조할 계획입니다. 집필은 배우의 첫 대사처럼 조심스럽게 시작해 전문가들의 충고를 참고하면서 계속 써 내려갈 것입니다.”
‘김용판 중국통사’가 나오면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2003년 20개 중국 인터넷 사이트가 1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세기 중국 10대 문화우상’조사에서 루쉰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대만에서도 ‘인기 있는 역대 인물’ 설문 조사에서 쑨원, 천슈이볜, 제갈량 등과 수위를 다투는 인물이 쓴 중국사이기 때문이다. 소설 ‘천룡팔부’는 올 3월 중국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고 1998년에는 중국 국가천문대가 발견한 소행성에 그의 이름을 붙였을 정도다.
그러니 1980년대 ‘소설 영웅문’에 열광했던 한국인들로서도 “한족과 이민족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에 주목해 강호라는 상상의 세계를 통해 대안적 중국을 제시했고, 협객을 무기력한 한족 국가를 대신해 이민족과 싸운 것으로 그린”(올해 서울대 중문과 유경철씨 박사학위 논문) 그의 중국사가 지나친 중화중심주의에 물들지 않을 것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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