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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회복지 원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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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회복지 원년' 대통령

입력
2009.08.2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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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사회복지 원년' 대통령으로 기록된 이는 대공황 속에 25%의 실업률을 안고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그런데 후세는 루스벨트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실과 뉴딜 정책에 의한 대형 댐 건설사업 등을 떠올릴 뿐, 실업급여와 저소득층 생계비 보조가 그때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흔히 잊고 있다.

본격 사회안전망 구축한 DJ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비슷하다. 민주화 투쟁과 남북 정상회담 업적은 열심히 떠들지만, 외환위기로 도시빈곤층 비율이 7%에서 20%로 치솟은 해에 취임한 그의 재임 시절 비로소 사회안전망이 본격적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좋은 제도를 도입한 업적은 쉽게 잊힌다. 독일제국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세계 최초 의료보험 도입, 나폴레옹의 세계 최초 민법 제정 등이 전형적인 예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원년을 기록했다고 할 만한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한 1998년 국민 1인당 소득은 1996년의 2만 달러에서 7,300달러로 떨어졌다. 그러나 국민의정부는 국민연금 적용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 가입자 숫자가 780만에서 1,600만으로 늘어났다. 이어 2000년에는 제 힘으로 먹고 살 수 없는 국민을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했다. 생계비를 지원 받는 사람을 37만 명에서 155만 명으로 늘렸고, 받는 돈도 월 13만원에서 20만원으로 높였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 업무가 폭주하자 다른 공무원 숫자는 줄이는 가운데도 사회복지 전문요원을 거의 2배나 증원했다. 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치매병원 숫자도 2배 이상으로 늘렸다. 장애수당과 저소득층 보육료 지원 및 경로연금은 대체로 3배 수준으로 높였다. 외환위기 속의 당시 경제상황과 재정형편을 생각하면, 정책 하나하나가 여간 독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나는 훗날의 역사가들이 이 '독한 마음'을 철학 또는 신념으로 해석하리라 믿는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사회복지 원년의 업적을 이룰 때도 반대와 비판이 많았다. 일부 언론의 비난은 그가 죽은 뒤에도 그칠 줄 몰랐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루스벨트를 공개적으로 "공산당원(사실은 빨갱이)"이라고 욕한 것은 상징적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도움닫기이자 디딤돌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는 상식 축에도 못 끼는 상식이지만 개척자의 길은 그토록 험했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에 비하면 김 전 대통령은 여건이 한결 나았다. 이를테면 전국민 의료보험 실시는 국민소득이 3,000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에 고 박정희 대통령이 밑그림을 그린 것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른 업적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루스벨트가 끊임없이 위헌 시비에 시달리고 실제 위헌 판결까지 받은 데 비해, 김 전 대통령은 사법부는 물론이고 진보적 지식인과 문화계 등의 엄호를 받았다. 과도한 복지지출이 성장잠재력을 좀먹는다거나 저소득층을 더욱 나태하게 만든다는 등의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웃도는 사회의 폭 넓은 지지가 있었다.

'햇볕' 같은 사회복지 개혁자

지도자가 대중이 원하는 정책을 펼 때, 그가 포퓰리스트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잣대는 일관된 철학의 유무이다.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 가운데 사회안전망 구축과 관련해서도 그가 포퓰리스트였는지 개혁자였는지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이 글 제목을 '사회복지 원년' 대통령으로 정한 것은 내 나름대로 그가 개혁자였다고 결론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좋은 제도는 햇볕과 같다. 누리는 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 감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사회복지 개혁이 없었다면 우리사회 빈곤층이 이번 경제위기를 견디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홍사덕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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