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발생 1년여 만에 이 사건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법원의 결정으로 용산참사 관련 미공개 수사기록이 공개되면서 발화 원인과 경찰의 무리한 진압 등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이 또다시 공방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연된 공방은 특히 불기소 처분을 받은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간부들의 기소여부를 가늠할 중요 변수가 될 수도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핵심은 역시 발화 원인이다. 이 논란은 발화 장면이 포착된 동영상 등 물증이 없었다는 점 때문에 상당 기간 공방의 대상이 됐다. 검찰은 관련자들의 진술과 각종 동영상 장면들에 대한 분석을 근거로'화염병에 의한 발화'로 결론을 내렸지만 변호인측의 생각은 달랐다. 김형태 변호사는 15일 "미공개 수사기록을 열람한 결과, 최소 3명의 경찰관이 '화재는 화염병과 무관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화염병과 관계없이 불길이 망루 처마 밑에서 흘러나와 황급히 불을 껐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발언은 변호인측의 일관된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증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검찰은 의미 없는 진술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작전 위치에 따라 목격 내용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상당수의 특공대원뿐 아니라 일부 피고인들도 '농성자가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고 1심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고 반박했다.
과잉 진압 여부도 또 다시 논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김 변호사에 따르면, 경찰 간부들은 검찰에서"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다면 (진압을) 중단시켰을 텐데 지도부가 상황을 잘 몰랐다. 특공대원들이 어떻게든 처리하겠다는 공명심에 일을 크게 벌였다.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망루구조에 대한 정보와 장비 부족으로 현장에서 갑자기 작전을 변경했고, 이 작전도 잘못된 것임을 알았지만 시간과 정보부족으로 중단하지 못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전날 기동본부장에게 "현장에 시너가 많으니 소방관 옷을 빌릴 수 있느냐"고 전화로 묻는 등 화재 가능성을 사전에 인식한 정황도 여럿 있다. "시너가 예상보다 더 많았다면 작전 방식을 변경해야 하지 않았나", "화염병과 시너를 소진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 아니냐" 등 경찰의 진압 과정 전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검찰의 질문 내용도 다수 공개됐다. 경찰 스스로 무리한 진압이었음을 어느 정도 인정했고, 검찰도 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의심해왔다고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역시 검찰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찰 지도부는 "주요장비가 갖춰져 작전진행에 문제가 없었다""도로에 화염병을 던지는 급박한 상황이라 진압하지 않을 수 없었다""농성자들이 망루에 시너를 끼얹을 줄은 예상 못했지만 그 외에는 안전진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진술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경찰을 강하게 추궁했다는 것은 역으로'봐주기 수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의심을 갖고 강하게 추궁했으나 결과적으로 불법 진압으로 볼 만한 부분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인측이 밝힌 새 진술들이 화재 원인을 뒤집을 만큼 큰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주장대로'소수 진술'의 성격이 강한 데다가 1심 재판부가 이 같은 내용을 두루 고려하고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등 15명에 대해 제기된 재정신청 사건의 경우에는 다소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검찰은 경찰 관계자들을 모두 기소하지 않아,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판단하지 않았다. 만일 법원이 새 진술 등을 감안해 재정신청을 받아들인다면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뒤집는 것과 같은 결과가 돼 법원 판단이 주목된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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