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총기 규제 대책이 최대 고비를 맞았다. 총기 구매자에 대한 예외 없는 신원·전과 조회를 핵심 내용으로 상원 민주·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마련한 포괄 법안이 17일 상원 전체회의에서 표결 절차를 시작하는데 실패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민주당 조 맨신(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과 공화당 팻 투미(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이 합의해 마련한 ‘맨신-투미 타협안’은 토론 종결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찬성 54표, 반대 46표를 얻어 부결 처리됐다. 토론 종결 투표에서 찬성 60표 이상을 얻어야 72시간 내에 토론을 끝내고 찬반 투표를 시작할 수 있다.
이 법안은 신원·전과 조회 범위를 총기 전시회, 인터넷을 통한 거래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면허가 있는 거래상에서 총기를 구매할 때만 신원·전과를 조회하도록 한정돼 있다.
이 법안은 최근 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9명이 찬성하는 등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상원 전체회의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져 표결 절차를 시작하지 못한 채 토론을 계속하게 됐다.
이 법안 외 반자동 소총 등 공격 무기 금지 법안은 찬성 40표, 10발 이상 대용량 탄창 금지 법안은 찬성 46표에 그쳤다. 워싱턴포스트는 “잇따른 패배는 오바마 대통령의 총기 규제 대책이 향후 입법화하더라도 한층 완화된 형태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전했다.
이번 투표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의 총기 규제 대책을 반대해온 미국 최대 로비단체 미국총기협회(NRA)의 정치적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NRA는 ‘오바마 대신 경찰 말을 들으라’는 내용의 광고를 하는 등 상원의원들을 겨냥한 전방위 로비를 해왔다”며 “NRA가 투표 전날 하루 동안 쓴 로비 자금만 50만달러”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투표 직후 백악관에서 “부끄럽다”는 규탄 성명을 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가브리엘 기퍼즈 전 하원의원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유족 등에 둘러싸인 채 “의회가 압력에 굴복했다”고 비난하고 “의회가 여론과 상식적 총기 규제 입법을 거부한다면 유권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며 입법을 촉구했지만 총기 규제 대책이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커녕 상원 문턱도 넘지 못해 상당 기간 표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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