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때까지 참기로 한
아들과 약속 지키기 위해
캔맥주 사 갖고 온 아버지
훼손된 딸 얼굴 끝내 못 봐
눈물 흘리는 어머니 등
가족·친구 발길 이어져
“아들, 오늘은 아빠가 술 좀 가르쳐 줄게.”
세월호 침몰 참사 40일째인 25일 오후 단원고 희생 학생 100여명이 안치돼 있는 안산 하늘공원 납골당. 2학년 7반 김모(17)군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치킨 한 마리와 맥주 캔 하나를 놓으며 “술은 원래 어른한테 배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학교에서처럼 납골당에서 나란히 자리한 친구들과 나눠먹으라고 가운데에 치킨 한 마리를 더 펼쳐 놓았다. 김씨는 아들의 영정 옆에 누군가 붙여놓고 간 견과류 봉지를 뜯으면서 “이것도 안주다”라고 웃었다. 하지만 웃음 속에서는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외동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리움은 이내 아들 자랑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원래 수능 때까지는 술 마시지 말고 참아라, 내가 가르쳐주겠다고 했었다. 약속을 참 잘 지키는 아이라서 정말 술 한잔도 안 했다”고 대견해했다. 어머니도 그 동안 참아왔던 김군 얘기를 풀어놨다. “아들이 교원대를 준비했어요. 중3 때 멘토 활동을 하면서 또래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 성적이 많이 오른 것을 보고 선생님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고등학교 입학 당시에도 성적이 우수해 상까지 받았다며 아들 자랑을 하던 김군 어머니는 요즘 몰랐던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낙이라고 말했다. “아들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우리도 갖고 있지 않은 사진을 보내줘요. 사진 속에서 아들 찾느라 정신이 없어요.” 단체 사진 한 장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던 김군 어머니는 한참 만에 아들을 찾고서는 “여기 있다!”고 반갑게 외쳤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씨는 “전에는 아들 방에서 홀아비 냄새가 났는데 이제는 그런 냄새가 안 나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일요일인 이날 안산 하늘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안타깝게 떠난 아들과 딸을 보기 위한 가족과 친구, 선후배를 찾아온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아직도 자식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눈물을 쏟는 어머니, 시신이라도 찾아서 감사하다는 아버지, 슬픔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웃음이 된 가족까지 표정은 다양했지만 먼저 간 아들, 딸에 다한 그리움만은 한결 같았다.
김군 부모에 앞서 하늘공원을 다녀간 9반 이모(17)양 어머니는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하고 딸을 보낸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양의 시신은 21일 수습돼 하늘공원에 안치된 지 사흘이 채 안 됐다. 이양 어머니는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하면서 딸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시신을 늦게 찾아 많이 힘들었는데 아직까지 못 찾았으면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위안을 삼았다. “장례식장에 실종자 가족들도 왔는데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어요. 우리를 위로해주러 왔지만 부럽기도 했겠죠. 그 분들도 하루 빨리 아이들을 찾아야 할텐데….”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늘공원을 찾는 7반 이모(17)군의 아버지는 생전 처음 사준 비싼 신발 때문에 아들을 알아봤다고 했다. “수학여행 일주일 전에 10만원이 넘는 비싼 신발을 처음으로 사줘서 신고 갔어요. 시신을 보러 갔더니 한 짝은 어디 갔는지 없고 한 짝만 딱 신고 있더라고요. 아빠 보라고, 아빠 나 신발 신고 있는 것 보라고 하는 것처럼…. 못 찾았으면 아빠가 자기 못 찾는다고 얼마나 서운했을까.” 이씨는 “세월호 추모를 정치적으로 선거에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우리 유족들은 아이들만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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