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전남 장성군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 화재로 사망한 간호조무사 김귀남(52)씨는 21명의 사망자 중 유일한 병원 직원이다. 광주 신가병원 빈소는 홀로 불을 끄려다 숨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탄식으로 가득했다.
어릴 적 할머니 품에서 함께 자랐다는 김씨의 친정 장조카 김진식(51)씨는 “어머니가 2009년부터 치매를 앓자 올해 1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말마다 찾아가 극진히 간호했던 사람이다. 왜 착한 사람만 먼저 떠나야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눈물을 훔치던 김씨의 친구 김경희(54)씨는 “어제 같이 저녁을 먹다가 야간 근무 들어가야 된다며 먼저 일어나길래 ‘너만 바쁘냐’고 놀렸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김씨의 자녀들은 영안실에서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지난해 결혼해 분가한 딸(29)은 “착한 엄마가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불을 끄려다 나오지 못하신 것 같다”고 오열했다.
병원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던 김씨는 별관 2층에서 환자 35명을 돌봤다. 화재로 비상벨이 울리자 소방 호스가 있는 소화전으로 홀로 뛰어 들어간 그는 환자들을 먼저 챙기다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쓰러졌다. 신가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의 아버지도 숨진 채 발견돼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전남 담양소방서 홍모(41) 소방관이 이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병원은 치매를 앓는 그의 아버지(71)가 입원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구조에만 전념했고, 수습이 끝난 후 사망자 명단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발견했다. 같이 현장에 투입된 한 동료 소방관은 “아버지의 병실에 먼저 들어가지도, 동료들에게 대신 구해달라고 부탁하지도 못한 채 묵묵히 구조를 수행한 홍씨의 심정이 어땠을지 말로 헤아리기도 어렵다”고 했다.
부모와 아들 세 식구가 함께 입원했다가 아들만 사망하거나 입원 몇 시간만에 변을 당한 환자도 있었다. 뇌출혈 수술 후 요양이 필요했던 A(53)씨는 지난해 2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82), 아내를 돌보기 위해 온 아버지(87)와 함께였다. 화재 당시 본관에 있던 부모님은 사고를 피했지만 형은 별관에서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A씨 동생(45)은 “아침에 부모님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데 아버지가 ‘형은 어딨냐? 어떻게 됐냐?’고 물으셨다. 차마 죽었다고 말할 수 없어 ‘응급실에 있다’고 대답했다”며 “세월호 참사가 안타까웠지만 당해보지 않아 몰랐는데, 이렇게 당사자가 되니 너무 참담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가족 박종길(43)씨는 “중풍이 있는 아버지가 광주의 다른 요양원에 있다가 이 곳 시설이 더 좋다는 말에 어제 옮겨왔다”고 가슴을 쳤다. 그는 “아버지가 중풍이 있었지만 지난 4월 여수 아쿠아리움으로 가족 여행을 함께 갈 정도로 정정하셨다”며 “7시간도 안 돼 사고를 당하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눈물을 흘렸다.
장성=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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