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케냐 키메토가 2시간 3분 벽 깨며 다시 입증
천혜의 경기 조건, 주최측과 시민의 열성
나지막하고 평평한 길, 선선한 바람, 그리고 전 코스를 가득 메운 열광하는 관중.
마라토너가 기록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를 고루 갖춘 곳으로 베를린대회가 꼽혔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3일 “왜 마라톤 기록은 베를린에서 자주 깨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베를린 마라톤대회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지난달 28일 제41회 독일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케냐의 농부출신 마라토너 데니스 키메토(30)가 42.195㎞를 2시간2분57초에 완주하면서 베를린은 다시 한번 마라톤 최고기록의 ‘성지’임을 입증했다. 마라톤 기록이 2시간2분대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를린 마라톤 대회 총감독 말크 밀데는 베를린이 마라톤 기록을 깨기에 적합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 장소라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먼저 고도의 변화가 거의 없는 베를린의 평지는 선수들의 기록 향상을 돕는다. 출발점 브라덴부르크문의 해발은 38m 정도이다. 마라토너들은 줄곧 거의 평지에 가까운 코스를 달린다. 고도가 가장 높은 구간은 53m이고 가장 낮은 구간은 37m다. 베를린 시내 한 바퀴를 돌아 출발했던 브라덴부르크문을 통과 하는 순환코스다. 런던마라톤에 비해 코너도 더 적은 편이다. 보스턴 마라톤은 급격한 고도 변화가 선수들의 페이스 조절을 방해해 거의 세계최고 기록이 나오기 어렵다. 또 베를린 시내의 아스팔트 도로는 콘크리트 도로에서 뛰는 것보다 훨씬 관절에 무리가 덜 가기 때문에 마라토너들이 편안함을 느낀다.
기록 수립에는 날씨도 한 몫 한다. 9월 말의 베를린의 온도는 평균 15도 정도로 전문가들은 마라톤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라고 평한다. 바람도 잔잔한 편이다. 런던 마라톤 참가자들이 템스강변 제방을 따라 달릴 때 강한 바람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축복 받은 날씨다.
마라톤 환경을 좌우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회의 ‘흥행’이다. 높은 상금, 스타 마라토너들의 출전, 40km가 넘는 코스를 에워싼 관중들이 기록의 산파 역할을 한다. 1974년 겨우 300여 명의 마라토너가 숲 속을 뛰어가는 수준이었던 베를린 마라톤은 1981년 도심으로 코스를 옮겨왔고 매년 7만 명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대한 마라톤 축제로 성장했다. 이틀간 열리는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는 마라톤뿐만 아니라 어린이 마라톤, 인라인 스케이트 마라톤, 휠체어 마라톤까지 열린다. 지난 9월 열린 대회에서도 130개국에서 5만6,000여 명의 사람들이 각종 마라톤에 참가했고 이를 관람한 관중도 100만명에 달했다.
다양한 흥행 요소들이 베를린 마라톤의 성공을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2007년 이후로 남자 세계 최고기록을 다섯 차례 갈아치우면서 마라톤 팬들은 베를린 대회의 특별한‘행운’에 더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유는 ‘노는 물’이 다르다는 데 있다. 많은 마라톤 대회들이 스타 마라토너들을 ‘모시기’ 위해 거액의 초청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베를린 마라톤은 오히려 스타의 등용문이 됐다. 에디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41), 케냐의 윌슨 킵상(32), 그리고 최근 데니스 키메토까지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대회 인지도는 자연스레 올라갔다. 대회가 유명해져 스타 마라토너들의 대거 출전하면 기록은 더 쉽게 나온다. 이번 대회에서도 키메토와 엠마누엘 무타이(30) 케냐의 두 마라톤 스타가 함께 달리면서 서로의 페이스 메이커가 됐다. 무타이를 견제하며 페이스를 유지하던 키메토는 결국 결승선을 약 5km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승부수를 던져 2시간 2분대 장벽을 허물어뜨렸다.
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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