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사우회 기업에 5년간 18억, 도로公 영업소 79% 前 직원 운영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1층에 입주한 기념품가게(33㎡)의 월 임대료는 36만원. 같은 면적 기준 서울 시내 평균 임대료 708만원의 5% 수준이다. 한은이 제작하는 기념품을 위탁 판매하지만 간행물을 뺀 판매수입 전액이 점포 몫이다. 같은 층의 커피숍은 아예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 되레 한은이 가스 수도 전기료를 대신 내준다.
두 매장의 운영자는 총재 이하 한은 현직 임직원이 가입된 행우회가 100% 지분을 가진 서원기업이다. 이 업체가 최근 5년간 한은에게 수의계약으로 따낸 일감은 18억7,000만원 규모, 화폐 포장, 청소 등 단순 업무까지 싹쓸이했다.
전국 고속도로 영업소 335개소 중 전직 도로공사 직원이 운영하는 곳은 무려 265개소(79%). 수입 상위 20곳 중 19곳이 여기에 포함된다. 도로공사의 인쇄출판 용역은 현직이 80%를 차지하는 사원 친목모임(도성회)이 도맡고 있다. 2008년부터 이 단체가 도로공사로부터 따낸 수의계약 일감은 35억7,000만원어치에 달한다. 도성회가 100% 출자한 회사 H&DE는 고속도로 휴게소 5곳과 주유소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를 앞세운 공공기관의 ‘제 식구 챙기기’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쟁입찰 원칙을 무시하고 내부자 관련 사업체에 이윤을 몰아주면서 퇴직자 자리도 확보하는 식이다. 특히 일부 기관은 현직 임직원들이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자체 윤리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한국일보가 국정감사 자료 등을 취합한 결과, 공공기관의 일감 몰아주기는 대다수 부처 및 산하기관에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은 전직 기상청장 A씨가 설립한 재단법인 한국기상기후아카데미에 2011년 이후 발주한 교육용역 사업 93건을 전부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퇴직자가 설립한 농산물 비축기지 관리회사 B사와 1999년부터 15년간 수의계약으로 294억원 규모의 용역 사업을 맡겼고, 한국수력원자력은 퇴직 간부들이 재취업한 22개 업체와 올해 상반기에만 4,666억원 규모의 사업계약을 맺었다.
공공기관 일감을 독식하는 업체들이 예외 없이 해당 기관 퇴직자의 낙하산 온상이 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B사의 경우 사장 및 이사직이 3년마다 aT 출신으로 교체됐고, 현직 직원 36명 중 23명이 aT 퇴직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관들은 내부 출신자의 전문성, 숙련도 때문에 일감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는 입장. 그러나 무분별한 수의계약은 입찰경쟁을 통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공공기관 부실로 이어지기 쉽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공공 부문의 일감 몰아주기는 민간 부문의 일감을 줄이고 공공요금 인상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공공기관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층이 현직 임직원까지 확대되면서 영리업무 규정 위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서원기업의 경우 한은 임직원 모임인 행우회가 운영에 관여하고 배당금까지 수령하면서 한은법이 규정한 임직원의 ‘영리기업 관여 금지’를 명백히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세법 개정 등을 통해 규제를 강화해온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슷한 부당 행위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올 2월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를 통해 공공기관 일감 몰아주기 행태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고 규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별다른 실행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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