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앞두고 수업은 도움 안 돼" 수시 모집 늘며 파행 더욱 심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선생님들도 수업하는 게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하세요. 오전 8시에 등교해서 오후 4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종일 자습만 하는 거죠.”
14일 서울 강동구 A고교 3학년인 박모(19)군은 수능을 20여일 앞둔 학교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가 속한 학급 인원은 40명. 그 중 15명은 예체능 실기 준비를 위해 학교에 잠시 들렀다가 오전 조퇴 후 곧장 학원으로 간다. 수시모집에 ‘올인’한 학생 6명은 결과를 기다리며 매 시간 졸거나 소설책을 읽는다. 박군은 “졸아도 자습에 방해되지 않으니 선생님들도 그냥 놔둔다”며 “각자 준비하는 대입 전형이 서로 달라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3학년 2학기가 된 고교 교실은 수능 때문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대학 진학이 고교 교육의 주목적이 되면서 3년 6학기 고교 과정을 5학기로 끝마친 뒤 3학년 2학기부터는 EBS 교재 복습과 자율학습 위주로 정규 수업을 진행한다. 대입제도가 고교 학년제까지 뒤흔드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의 B고 지리교사 윤모씨는 2학기부터 자율 좌석제를 운영 중이다. 3학년 학생들 중 지리수업을 들을 학생만 앞자리에 앉도록 했다.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지리를 택하지 않았거나 다른 과목 보충학습이 급한 학생들은 뒷자리에서 각자 공부를 한다. 40여명인 한 반에서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10명 남짓이다. 그는 “어차피 진도는 1학기에 다 끝마쳤기 때문에 2학기에는 급한 불부터 끄라고 다른 공부를 해도 이해해준다. 수능을 코앞에 둔 다른 학교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울 C고 교사는 “정리 차원에서 하는 수업이지만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 보긴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대입에서 수시모집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고3 교실의 수업 파행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서울 구로구 D고의 3학년 담임교사는 “수시모집에선 3학년 2학기 내신 성적과 출결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2학기가 되면 결석, 지각하는 학생들이 속출한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이후 고3 교실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정상수업 진행이 어려워 교육청에서 금지한 단축수업까지 진행하는 학교도 있다. 일선 교사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E고 교사는 “정부가 진로탐구 등을 강조하지만 사실 고교 교육의 목표는 수능을 잘 치르고, 좋은 대학에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것 아니냐”며 “현재와 같은 입시제도에서는 고3 2학기 수업 파행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변태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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