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기상도가 종잡을 수 없다. 북한 고위실세 3인의 전격 방남을 계기로 형성된 제2차 고위급접촉 개최 합의 등 국면전환 분위기가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남북간 총격으로 어두워졌다가, 3년8개월 만의 군사당국자 회담으로 반전되는가 싶더니, 또 악재가 터졌다. 북측이 16일 조선중앙통신의 ‘공개보도’를 통해 군사당국간 접촉 전말을 공개하며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 개최의 전도가 위태롭게 됐다고 으름장을 놓고 나선 것이다.
남북회담 진행이 여의치 않을 때마다 비공개 접촉의 전말을 일방적으로 까발리며 남측을 압박하는 북측 행태는 신물이 난다. 가깝게는 지난 7월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의 인천아시안게임 실무접촉 내용의 일방적 공개다. 실무접촉이 결렬되자 남측 대표 발언 내용을 모두 공개하며 책임을 전적으로 남측에 돌렸다. 이명박 정부 때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비공개 접촉 내용의 일방적 공개는 맥락이 왜곡되기 쉽고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일이다. 엉뚱한 진실게임을 초래해 사안의 본질과 상관 없이 협상 에너지를 소진시키기도 한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북측이 남북대화 수준과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태부터 그만둬야 한다.
이번에 북측이 15일의 비공개 장성급 남북군사회담 내용을 공개한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데 따른 화풀이성 압박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측은 이 회담에서 서해 예민한 수역을 넘지 않는 문제, 고의적 적대행위가 아니면 선(先)공격 않기,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교전수칙 수정, 대화와 접촉을 통한 문제 해결 등을 제안했다. 실제로 이런 제안을 했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재 남북간 낮은 신뢰상태에서 그런 내용에 합의하기는 무리다. 북측은 특히 서해NLL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경비계선이란 것을 그어놓고 남측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안될 말이다. 7일 남북 함정간 총격전이 말해주듯 서해NLL은 위험한 불씨를 안고 있는 만큼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해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따라서 당분간은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획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한 남북기본합의서 조항을 따르되 남북고위급 회담이나 군사회담,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해 가는 게 현실적 방안이다.
경우가 이러함에도 북측이 군사당국간 회담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제2차 남북고위급 접촉 전도를 운운하며 남측을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해NLL 충돌이 우려되고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불만일수록 고위급 접촉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게 현명하다. 우리 정부도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로 북측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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