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결심 앞두고 증언대 올라
미리 쓴 글 꺼냈지만 금세 울음바다
"진상 밝히고 엄벌해 달라" 이구동성
“저는 앞으로 제 친구들처럼 평범한 20대로 살 수 없겠지만, 평생을 분노하고 고통 속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재판장님, 제발 우리가 재판장님을 훌륭한 어른으로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을 저들처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21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 증인석. 세월호 참사로 남동생을 잃은 누나의 눈물 어린 호소가 이어지자 이내 법정은 숙연해졌다.
이준석(68) 선장 등 선원 15명에 대한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가 결심공판(27일)을 앞두고 마련한 피해자 (증인)진술 시간은 울분과 통곡으로 뒤덮였다. 용기를 내 증인석에 앉은 유족들 13명이 미리 준비해온 글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방청석에선 ‘꺼억, 꺼억’ 하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일부 유족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법정 밖으로 뛰어나가기도 했다.
증인 선서 직후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이준석 선장의 탈출 모습 등이 담긴 5분 분량의 동영상이 법정 모니터를 통해 방영되자 유족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방청석에선 “너희들이 사람이 맞냐!” “아이들의 어린 영혼이 무섭지도 않냐”라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유족들이 재판과정에서 선원들에게 보여줘 죄를 뉘우치라는 뜻으로 준비한 동영상이었지만 되레 자신들의 상처만 덧내고 말았다.
증언석에 오른 유족들이 재판부에 바라는 것은 동일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죽어야 했는지 그날의 진실을 밝혀주시고, 저들을 엄벌에 처해 주세요.” 고(故) 이지애 교사의 아버지는 “선장 선원들은 학살자다. 이들 때문에 우리 행복도 인생도 끝났다. 300여명을 학살한 저들에게 사형을 선고해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오열했다. 고(故)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는 “저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은 사치”라며 선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선원들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게 그나마 유족들에 위안을 주는 길이다”며 호통을 치고, “한 명이라도 양심선언을 해달라. 그럼 그 사람 존경하겠다” 며 호소하기도 했다.
유족들의 피해 진술이 4시간 가량 이어지는 동안 재판부는 증언대에 선 유족과 생존자들을 향해 “죄책감을 갖지 말라”며 다독였다. 임 부장판사는 이날 마지막 유족의 진술이 끝나고 단원고 2학년 8반 학생들의 동영상을 시청하기 앞서 “(동영상을 보면) 너무 슬퍼서 (유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못할 것 같아 미리 인사 드린다.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재판부의 짧은 인사말이 끝난 뒤 법정 모니터에는 ‘우린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 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숙연한 음악(어메이징 그레이스)과 함께 흘렀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잖아!” “살인마들아!” 동영상 재생이 끝난 뒤에도 유족 80여명은 통곡하며 한참 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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