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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예술가는 최고 존엄을 풍자할 수 있는가

입력
2014.10.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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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노란 꽃을 단 대통령의 그림이 광화문 하늘에 여우비처럼 흩날렸다. 면세점 건물 옥상이었다. 작가는 3만5,000장을 뿌리려 했지만 곧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를 취재하던 기자도 함께 잡혀 들어갔다. 경찰이 내건 죄목은 ‘건조물 침입’이었으나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면세점 건물에 무단 잠입했다고 입건된 것이 아니라, 최고 존엄에 대한 풍자가 문제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또 이렇게 이죽거렸다. 여우비로 뿌리지 말고 풍선에 매달아 날렸어야지. 며칠 전 대북 전단 살포를 그만 두라며 북한이 우리 땅에 포탄을 떨어뜨렸을 때, 여당은 이렇게 대꾸했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정부는 민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 나라는 예술가의 풍자에 개입하는 것일까.

얼마 전 프랑스에서도 ‘정치인의 희화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입양인 출신의 첫 상원의원 장-뱅상 플라세가 그 주인공이었다. 니콜라 깡들루라는 유명 코미디언이 플라세의 억양을 우스꽝스레 흉내 내었다. 악랄하게 과장된 딱딱하고 촌스런 발음이 웃음 포인트였지만, 정작 7살 때 입양된 플라세의 말투는 전형적인 프랑스인과 다르지 않다. 이 코미디언은 예전에도 아프리카 출신 정치인의 억양을 비웃었던 전력이 있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프랑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감한 시기, 플라세를 향한 풍자를 두고 대중의 반응은 양분되었다. 누군가는 깔깔거렸지만 누군가는 ‘인종주의’적 위험한 풍자라 경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 플라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프랑스 녹색당의 유력 정치인이면서도 영락없이 한국인의 얼굴을 갖고 있는 그는 코미디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깡들루씨, 당신을 한국식 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로선 당신의 유머가 전혀 재미있지 않더군요. 제 목소리를 제대로 흉내 내려면 저와 함께 김치를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답을 기다리지요.” 대중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허를 찌르는 플라세의 트윗에 뜨거운 호의를 보냈다.

한편 예술가의 풍자가 용납되지 않은 세상에선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옛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란 오페라로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공연 첫해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94회, 레닌그라드에선 83번씩이나 무대에 오를 정도로 비평가와 청중 모두로부터 휘황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그 뿐인가. 유럽의 주요 도시에 초청되어 ‘사회주의 오페라의 높은 성과’란 호평도 이끌어 내었다. 국제적 명성을 거머쥐자 공산당은 작곡가를 ‘소비에트 인민의 영웅’이라 추켜세웠다. 스탈린 역시 엄청난 흥행을 직접 목도하고 싶어 볼쇼이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오페라가 채 끝나기도 전 객석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극중 독살 장면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던 까닭이었다. 피의 숙청을 단행하고 있던 독재자로선 주인공에게 살해 당한 인물이 꿈속에 나타나 저주하는 장면이 편할 리 없었다. 다음 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0세기 음악사의 가장 큰 비극을 선언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이라 낙인 찍혔고, 사회주의 오페라의 높은 성과라 칭송 받던 므첸스크의 맥베스 역시 ‘조잡하고 천박한 쓰레기’라 일거에 추락한 것이다. 작곡가는 언제 어느 때 숙청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웅크렸고, 오페라는 그 뒤로도 27년 동안이나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머리에 노란 꽃을 단 대통령의 그림이 며칠 전 대한민국의 하늘에 여우비처럼 흩날렸다. 그림을 흩뿌리러 옥상에 오르기 전, 작가는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페이스북에 남겨 놓았었다. 그는 ‘전립선이 떨리도록 두렵다’ 토로하면서도, ‘엿 같은 세상을 엿 같다 말해야’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얘기했다. 그리곤 준비했던 3만5,000장을 다 뿌리기 전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허나 그 파급은 사람들의 설왕설래로 3만5,000장 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 나갔다. 마침 이 시절은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이버 망명이 난무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소하는 동시에 불안해했다. 예술가의 풍자적 표현조차 비장한 각오로 내놓아야 할 이상한 시절을 살고 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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