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환수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3대 조건’대로라면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10년 내 환수는 어렵다는 전망이 유력하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번 한미 합의는 헌법에도 반한다. 그 합의가 우리 주권에 대한 기존 제약을 심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국회동의를 요하는 사항(헌법 제60조 제1항)임에도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홍원 총리는 “전작권 전환 연기는 국방 당국 기관 간의 약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전작권을 미군에 맡기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전작권 전환을 결정했을 시에도 국회의 동의를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작권 및 이번 연기결정의 본질을 외면한 한심한 말장난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 국가의 계속성을 수호할 수 있도록, 따라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수단의 하나로 ‘군통수권’을 부여받고 있다. 군통수권은 군조직을 형성ㆍ관리하는 군정권과 군을 지휘ㆍ통솔하는 군령권으로 구성된다. 이 군령권의 일부가 작전권이다. 작전권은 개념상으로는 평시작전권과 전시작전권으로 구분된다. 군통수의 궁극적 목적이 전쟁에서의 승리임에 비추어 보면 전작권이 평시작전권은 물론 평시의 군정권 행사까지도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전작권은 군통수권의 핵심인 것이다.
영원한 동맹관계는 없다. 동맹국 사이의 이해가 늘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자국의 이익보다 동맹의 이익을 앞세우는 나라도 없다. 더욱이 우리가 통사정해서 전작권을 이양 받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미국 이익 우선주의를 제어하기 어려울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우리 군 전체에 대한 전작권을 미국에게 넘겨준 것은 국익 수호를 위해 군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조차도 미국이 양해하지 않는 한 군 전체를 동원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주권에 대한 심대한 제약임에 틀림없다. 전작권이 우리와의 협의를 통해 행사된다는 것도 이 같은 법적 평가를 바꿀 수는 없다.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이 통수권을 대외적으로 온전히 행사할 수 없는 국제법적 상태가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금번 합의는 기존의 ‘시한부 주권 제약’을 ‘무기한 주권 제약’으로 변경한 것으로서 국가의 ‘비정상성’을 심화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전쟁 이래 존재했던 주권에 대한 제약을 해소하기 위한 참여정부의 전작권 전환결정에 국회동의가 없었음을 이유로 이번 합의에도 국회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양국 군사당국 기관 간의 합의’ 운운도 우리 헌법의 관점이 아닌 해외에 다수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초강대국 미국의 입장에 충실한 답변일 뿐이다. ‘주한미군주둔에 관한 한미협정(SOFA)’도 미국에게는 의회의 동의를 요하지 않는 단순한 행정협정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외국군의 국내주둔과 관련된 문제를 규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회동의를 요하는 조약(헌법 제60조 제2항)이다. 헌법재판소도 이점을 분명히 한 적이 있다. 이번 합의도 내용상 우리에게는 협상주체나 합의문의 명칭과 무관하게 국회동의를 요하는 조약인 것이다.
금번 정부의 결정은 다른 이유 때문에도 헌법에 반한다. 독임제 관청인 대통령은 선거로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지만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측면에서는 합의제 기관인 국회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헌법은 ‘국가생활에 본질적 의미를 갖는 사항’에 대한 결정에 국회가 법률, 동의, 승인 등의 형식으로 관여할 것을 요구한다(본질사항 의회유보원칙). 그럼에도 정부는 민족의 명운을 가를 수도 있는 전작권 환수 무기연기 결정에서 국회를 완전히 배제했다. 그러므로 이번 정부 결정은 국회의 추인이라도 받지 않으면 정책의 타당성 여하를 떠나 합헌성을 획득할 수 없다.
차제에 전작권 환수과정 및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비롯한 안보정책에 대한 지침을 규율하는 법률이 제정돼 우리도 일관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정상국가’로 속히 이행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군통수권은 대통령의 독단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헌법 제74조 참조).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