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역전마라톤 1회 대회 참가한 한승철·임종우·양재성·이상철옹
"당시엔 코스 3분의1이 자갈밭...과수원 주인이 궤짝으로 과일 주고 서울 중앙청 구간엔 구름관중 응원"
참가자 중 생존자는 이제 5명
까까머리 ‘역전의 용사’들이 59년 만에 부산~서울 대역전경주대회(이하 경부역전마라톤) 무용담을 회고했다.
1955년 제1회 경부역전마라톤에 출전한 한승철(84), 임종우(84), 양재성(80) 이상철(80) 옹이 12일 잠실에서 만나 옛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이들은 “경부역전마라톤이 벌써 환갑을 맞이 했느냐”며 “당시 경부역전마라톤은 국가적인 행사였다. 통과 구간마다 지역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박수를 치고 응원해줬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국전쟁직후 제대로 된 도로망도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감히 부산에서 서울까지 릴레이로 달린다고 상상이나 했겠느냐. 요즘 같으면 달나라에 가겠다는 발상과 같은 것이다. 각 시ㆍ도지사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선수들을 성원했다”고 털어놓았다.
올해로 60회째를 맞은 경부역전마라톤은 한국일보 창간 발행인 백상 장기영 사주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직후 통일의 염원을 안고 창설한 대회다. 부산을 출발해 신의주까지 달린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내세우며 1955년 첫 발을 뗐다. 참가자는 육ㆍ해ㆍ공군과 서울시청 소속 선수들이었다. 대회 차량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원을 군에서 해줬다. 한승철, 양재성 옹은 해병대 소속, 임종우 옹은 육군 특무대 소속, 이상철 옹은 서울시청팀의 일원으로 국토를 종단했다.
양 옹은 “다들 갓 20대를 넘긴 나이였다. 연병장을 돌면서 훈련했고, 육군과 해병대 간의 자존심 싸움이 상당했다”며 “당시 특무대 코치가 바로 손기정 선생이다. 그래도 우리와 특무대, 서울시청팀의 실력 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껄껄 웃었다. 이 옹은 “경부역전마라톤 코스 중 3분의 1이 자갈밭이었다. 운동화라고 있긴 있었지만, 뜯어지기 일쑤였다”며 “자동차 타이어 고무를 잘라 신발 밑바닥에 붙였다. 날씨가 너무 추워 두꺼운 바지를 입고 뛰었다”고 말했다.
한 옹은 원 없이 과일을 먹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는 “달리다 보면 여기저기서 과일을 나눠줬다. 과수원 주인들이 궤짝으로 과일을 내왔다”면서 “선수 한 명이 부산부터 서울까지 모두 뛰는 줄 알았던 게다. ‘힘들어서 어떡하냐’고들 하더라”고 웃었다. 한 옹은 이어 “밀양에 들어가기 전 다리가 끊겨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곤 다시 뛰었다”며 “장기영 사주도 대회가 열리는 일주일 간 군용 지프차를 타고 선수들과 종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 체육기자 1호 조동표씨가 견습기자로 자신들을 취재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경부역전마라톤은 한국 육상인들의 등용문이다. 황영조, 이봉주의 올림픽 금, 은메달도 이 대회를 통해 담금질 됐다”고 말했다. 실제 1950~70년대 언론사 주최 마라톤대회는 20㎞ 단축코스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부역전마라톤은 500㎞가 넘는 코스를 달리며 전국적인 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양 옹은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여교사의 인솔로 연도에 나온 어린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응원을 했고 통과하는 주요지점마다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면서 “서울 남대문~중앙청 구간에 이르러서는 구름관중이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4차선의 도로가 꽉 막혔다”고 말했다.
역전의 용사들은 1회 대회뿐만 아니라 수년간 경부역전마라톤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면서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임 옹은 1957년 보스턴 마라톤 3위 입상자다. 한 옹은 같은 대회 5위,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5,000m 은메달리스트다. 이 옹은 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해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와 실력을 겨뤘다. 양 옹은 97, 99년 세계육상선수권 한국팀 단장, KBS 육상 해설위원, 한양공업고등학교 교장(99년) 등을 지냈다.
양 옹은 “1회 대회 참가자 중 생존자는 5명이다”며 “언젠가는 후배들이 꼭 신의주까지 한 번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육상연맹 쪽에서도 한 번 타진해 봤지만 아쉽게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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