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베이징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섯 번째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8년 한 해 동안 후진타오 전 주석을 여덟 차례 만난 이후 최다 횟수를 기록했다. 한중 양국 정상의 잦은 만남으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정상 간의 개인적 친밀도가 현재 ‘최고’라는 평가답게 낙관하기 어려웠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에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우려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이득은 우리나라의 대중 외교의 전략적 입지가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여론이 한껏 고무된 분위기이나 이런 전략적 호기를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한중 관계는 전임 정부 때와는 다르다. 재임 5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은 후 주석을 스물여덟 차례 만났지만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태 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중국을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중국이 우리를 더욱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한중 FTA 타결에서 방증됐다. 중국의 주변지역 외교 행보에 대한민국의 지지와 참여는 절실하다. 이는 동아시아에서의 우리 위상을 방증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대중외교 레버리지가 전이됐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중외교의 전략적 호기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형국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더욱 치밀한 대중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한중 FTA의 체결로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 추진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게 됐다. 중국이 추진하는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와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에서 우리는 두 주도국과 FTA를 맺고 있어 우리의 협상 전략 공간이 확대됐다. 두 자유무역지대 구상에 대한 우리의 참여는 우리에게 덤이 되지 손해가 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양자 간 FTA의 체결로 이들이 우리의 참여 결정에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압력이 절감됐다.
오늘날 동아시아 형국을 보면 중국은 육ㆍ해상에서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의 약칭) 구축을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과 남ㆍ동 중국해에서의 항해자유권 수호를 위해 중국과 외교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중미 갈등 구조 속에서 우리의 외교적 입지와 공간도 확대됐다. AIIB 구상에 미국과 일본이 배제된 만큼 동아시아 국가 중 여기에 출자해 실현에 일조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미중 간의 해상 패권을 둘러싼 외교전이 무력으로 종식되기는 어렵다. 동맹국 중 미국을 재정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중국 외교전을 무력화하면 독박을 쓸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독자적으로 중국과의 갈등을 무력화할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주둔 지역에서 미군 군사력과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선택밖에 없다.
지금 동아시아의 형국은 중국에게 불리하고 우리에게 유리하다. 중국은 주변지역 질서를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우리에게 제안할 것이다. 또 그럴 때마다 우리의 국론이 분열돼 ‘남남갈등’이 조장되는 것을 중국은 익히 알고 있고 이를 이용하려 한다. 중국의 지난 7월 AIIB 참여 제안과 미국의 고(高)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의 배치에 대한 이견 제시로 우리는 지난 3개월간 소모전을 벌였다. 동아시아의 형국을 바로 이해했다면 불필요한 소모전이었다. AIIB의 지배구조문제로 시작된 우리의 참여문제 해답은 중국이 동아시아에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사드 배치문제가 미중 간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처한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형국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국익 관점에서 자신감 있는 대중외교를 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전략적 호기’ 효과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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