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권 사할 건 정면 충돌 양상 이민개혁 등 주요 현안 파급 우려도
CIA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 실태를 담은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가 공개되자마자, 미국 정치권에서 사활을 건 정면 충돌이 펼쳐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공화당 집권 시기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자행된 고문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라며 중간선거 패배 이후 움츠려 든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반박 보고서 및 관련 웹사이트(www.ciasavedlives.com)를 발표ㆍ공개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이 주도한 ‘고문 보고서’의 신빙성을 정면 부정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CIA의 고문은 미국의 가치에 반하며 미국의 위상에도 타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내놓은 성명에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어려운 시기에 많은 올바른 일들을 했지만, 일부 행동(CIA 고문)은 우리의 가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대 테러 대책 노력과 우리의 국가안보 이익에도 부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부시 전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 때 이뤄진 ‘치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특히 “가혹한 고문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위상에 중대한 타격을 주고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내가 권한을 행사해 절대 이런 방법(고문)에 의지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어느 국가도 완벽하지 않다”며 “미국을 특별히 강하게 만드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를 솔직하게 직시하고 단점을 인정한 뒤 더 좋게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리 리드(네바다)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고문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제대로 먹히지도 않았으며 미국에 악명만 가져다 줬다”고 비판했다.
이에 맞서 공화당도 사전 준비한 절차에 따라 반격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존 브레넌 국장의 지휘를 받는 CIA도 조직 붕괴를 막으려는 듯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조사위원장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민주ㆍ캘리포니아)이 이날 오전 보고서를 발표한 순간에 맞춰 12명의 전직 CIA 고위간부가 공동으로 만든 ‘CIA가 생명을 살렸다’는 제목의 인터넷 사이트가 개설됐다. 이 사이트에는 ▦CIA 고문은 사전에 법무부 승인을 받은 ‘선진 심문기법’이며 ▦가혹한 심문을 통해 얻은 정보로 테러를 예방했다는 등 공화당 진영의 반박 주장이 일목요연하게 게시되어 있다. 미치 매코널(켄터키)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색스비 챔블리스(조지아) 상원 정보위 공화당 간사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CIA 조사가 테러 용의자를 잡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보고서 공개에 찬성한 존 브레넌 현 CIA 국장도 “과거에 저지른 심각한 잘못”이라면서도 “CIA 조사 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고 실제 공격 음모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며 보고서 신빙성에 대해 유보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공화당 중진이자 베트남 전쟁 때 5년간 전쟁 포로 생활을 한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의원은 “진실의 약은 때로 삼키기 힘든 법”이라며 보고서 공개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고문 보고서를 둘러싼 대립이 미국의 주요 국내외 정책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CIA 보고서를 둘러싼 갈등이 이민개혁 행정명령, 키스톤XL 송유관 건설법안,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등 주요 정국현안으로 파급될 경우 국내외에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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