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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짓밟힌 삶은 두려움과 슬픔의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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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짓밟힌 삶은 두려움과 슬픔의 지옥이었다"

입력
2015.01.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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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엘렌 코리 플루흐 日 만행 고발, 네덜란드 귀환 후 피해 수기집 출간

지난달 8일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페이페르 사무국장(왼쪽부터), 바흐덴돈크 회장, 할더르 국제문제 담당관은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도, 그다음 세대에도 위안부 만행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네덜란드 헤이그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페이페르 사무국장(왼쪽부터), 바흐덴돈크 회장, 할더르 국제문제 담당관은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도, 그다음 세대에도 위안부 만행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을 상대하는 일이 끝나면 화장실로 달려가 온몸을 씻어냈다. 그래도 더러움이 가시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몸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시민단체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묻는 재단’이 발간한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자 수기집’에서 고 엘렌 코리 플루흐씨는 위안부 생활의 고초를 이렇게 표현했다. 네덜란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00여명(추정) 중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엘렌과 얀 루프 오헤른(92)씨 둘뿐이다.

일본군이 동인도제도(현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1942년 봄,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렌은 자바섬 동부 젬버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다. 엘렌의 부모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이곳에서 식료품과 비단을 파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풍족하진 않아도 행복했던 엘렌 가족의 삶은 일본군들이 마을로 들이닥치면서 풍비박산 났다. 가족은 일본군 트럭에 실려 자바섬 중부 세마랑에 있는 할마헤이라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 생활은 끔찍했다. 눈만 뜨면 돌밭을 개간해 농사를 지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군화발과 주먹, 몽둥이가 날아왔다. 그렇게 2년 후 일본군은 캠프에 있던 15~30세 여성들을 불러 모았다. 여성들은 연단에 앉은 일본군 앞에 일렬로 서서 행진했다. 몸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예쁘지 않으면 심사에서 탈락했다. 담배 제조공장, 병원 등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 것으로 안 여성들은 심사에 최선을 다했다. 사흘째, 심사를 통과한 여성은 14명이었다. 그 때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수용소 생활은 차라리 천국이었다.

엘렌은 다음날부터 술집에서 일본군에게 술을 따랐다. 그 후에는 그들의 성욕을 채워주기 위해 일해야 했다. 위안소 입구에는 콘돔을 사용하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지만 일본군은 무시했다. 반항하면 구타를 당했고, 하루 종이컵 반 정도 배급되는 쌀(80g)도 주지 않았다. 엘렌은 수기집에 ‘일본군에게는 쾌락이었지만 나에게는 두려움과 슬픔의 지옥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침대에 누워 입을 꾹 다문 채 빨리 끝나기만 기도했다’고 적었다.

이런 일은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매일 반복됐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됐을 무렵 엘렌이 성병에 감염된 사실이 알려졌다. 몸도 마음도 짓밟혀 만신창이가 된 엘렌은 수용소로 옮겨져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지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엘렌은 이혼 후 1990년대부터 네덜란드와 독일의 대학, 의회를 돌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강연을 했다. 매달 둘째 주 화요일 네덜란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화요집회’에도 빠지지 않았다. ‘돈 벌려고 위안부 한 것 아니냐’는 등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일본의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2013년 2월 헤이그의 고향 땅에 묻힐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위안부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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