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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검찰을 통한 자의적 정치와 사이비민주주의

입력
2015.0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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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모든 폭력적ㆍ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ㆍ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로 정의하며, 이 질서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핵심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 정의에 의하면 검찰에 의한 빈번한 법의 왜곡이나 편파적 집행은 법치의 파괴로서 자의적 지배체제의 표현이 된다.

검찰은 청와대 ‘정윤희 동향’ 문건 누출 사건 수사 끝에 문제의 문건을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허위비방’ 문건으로 발표했다. 대통령과 관련된 세간의 풍설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던 정윤회 등의 국정농단설이 인구에 회자되며 위기에 몰리자 박근혜 대통령은 해당 문건의 성격을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규정하며 사건 수습을 검찰에 맡겼다.

검찰이 내 조직이라는 믿음이 아니면 취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미 채동욱 찍어내기를 통해 조직의 기강(?)을 단단히 세워놓은 터다. 대통령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깨알 같은 검찰의 ‘솜씨와 권위’에 기댔고, 검찰은 사실과 법을 짜맞춰가며 임면권자인 대통령 의도에 꼭 맞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그렇지만 검찰은 범부들에게 마저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 발표를 믿는 국민은 20%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도 있으니 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선거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누출사건과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사건 등에 대한 부실수사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최근 자의적 검찰권행사는 목불인견의 지경이다.

검찰은 북한체험을 전하는 토크콘서트에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신은미씨를 ‘강제추방’했다. ‘종북 콘서트’ 운운하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을 때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녀가 김정은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조치의 주된 근거였다. 검찰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행사주체들을 법적ㆍ도덕적으로 매장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왜곡된 정보와 냉전논리에 오염된 한 고등학생에 의한 황산테러로 조성된 보수세력의 수세적 국면은 종북논리를 통한 공세적 국면으로 일거에 전환됐다.

검찰은 ‘만만회’ 의혹을 제기한 박지원 의원, 박 대통령 사생활 관련 의혹을 제기한 외신 지국장 등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 언론인, 네티즌들을 박 대통령이나 그 측근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했다.

대조적으로 SNS 등을 통해 문재인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때 유병언 세모그룹의 부채를 탕감해 줬다고 주장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을 문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 부채탕감은 법원이 기업회생절차에서 결정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하 의원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었다. 또한 “전직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유병언 전 회장과 밥을 먹은 사진이 나왔다”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 전 회장 사이의 유착 의혹을 제기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서도 “명백히 허위임을 알면서 발언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면책특권을 적용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고소인의 상반된 증거는 간단히 무시해 버린 것이다.

법치행정의 원칙상 검찰은 ‘정권’이 아닌 ‘법’에 충성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당위적 요청은 통치수단으로 전락한 우리 검찰에게는 빛 바랜 경전의 경구일 뿐이다. 검찰은 수사권, 기소독점권, 기소재량권, 증거개시권 등 주어진 권한을 총 동원해 집권세력의 비리나 치부를 은폐해 주는 반면, 야당이나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정권비판을 위축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하고 이들을 범법자로 만들어 정치무대에서 배제하거나 그들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외면하는 등 정권의 머슴 노릇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자의적 법집행은 정당성 없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사건에서의 차별적 법집행은 공정한 정치적 경쟁의 법적 기반을 허물어 민주주의까지 위협한다. 정부와 여당이 검찰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세도를 부리는 사이에 ‘법’과 ‘국가’의 권위와 정당성은 휘발해 버리고, 우리 정치질서는 권위주의, 사이비 민주주의로 퇴행해 가고 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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