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제부문 약하지만 확실한 성과
중국과의 관계도 안정단계 유지
박근혜정부에 남북관계 다룰
역량 있는 사람 보이지 않아
오바마 정부 북한에 매우 부정적
이란처럼 핵협상 나서지 않을 것"
최근 봉변을 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병원에서 읽은 것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책이 있다.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다.
리퍼트 대사가 피습 이후 이 책을 손에 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광복 이후 2013년 5월까지 남북한 역사와 갈등, 그 과정에 세계 열강 특히 미국이 어떻게 간여했는지를 숱한 비화(秘話)를 섞어가며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한반도 정치ㆍ외교사의 필독서로 꼽힌다. 바로 그 때문에 반공교육에 취한 사람들에게서 용공(容共)서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이 책은 초판과 개정판까지는 한국전 참전 미군 장교이며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돈 오버도퍼(84)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썼다. 두 번째 개정에는 로버트 칼린(68)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객원 연구위원이 ‘2000년~2013년 5월’기간 집필을 맡아 공저자로 참여했다.
칼린 연구위원을 지난 3일 미 워싱턴 메이플라워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ㆍ18년)과 국무부 정보조사국(INRㆍ14년)에서 30년 넘게 남북한을 지켜본 전문가답게 한반도 정세와 남북한 관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날카로운 평가를 내놨다. 칼린 연구위원은 2013년 이후 남북 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건 북한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며, 한국이 저출산ㆍ고령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남북관계에서 지금처럼 우위에 있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됐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 협상에도 나설 것으로 보는가.
“부정적으로 본다. 이란 핵 협상이 마무리되는 6월이면 오바마 대통령 임기는 18개월밖에 남지 않는다. 그 시점에 6개월만 지나면 다음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된다. 새로운 협상에 나서기에는 좋지 않은 시기다.”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변화라도 있는 건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이란 핵 협상 타결이 오바마 정부로 하여금 북핵 협상에 나서는데 긍정적 역할을 할 걸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어 선택을 위해 고민하다)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곧 망할 거라고 보는가.
“아니다.”
-그러면 북한은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버틸까.
“얼마나 버티냐는 질문은 로마제국 얘기로 대신하겠다. 로마제국도 결국 망했다.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를 겪게 된다. 김정은 체제는 40년 이상 갈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4, 5명의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지도자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반드시 망하는 건 아니다. 김정은도 나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지만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실수를 해도 이를 극복하고 나가는 통치술을 알고 있다. 좋은 사례가 2009년 화폐개혁 실패다. 큰 혼란과 저항이 발생했는데 만약 그때 계속 밀어붙였다면 심각한 사태에 직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했다. 더구나 김정은은 젊다. 실수를 통해 통치술을 닦아 나갈 수 있다. 김정은은 몇몇 실수를 하겠지만 충분히 유연하고 북한 체제가 충분히 강하면 극복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수를 해도 한국이 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북한이 망한다’고 생각할까.
“(웃으면서)오바마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류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중동을 봐라. 시리아에서는 내전으로 수십만명이 희생됐다. 예멘사태는 또 뭔가.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체제가 지속될 수 있고, 선의로 한 일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순진한 건가.
“글쎄. 확실한 건 오바마가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체제가 주민들을 다루는 방식을 혐오한다. 하지만 우리 기준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다뤄야 할 때도 있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세상이 있다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두 개의 한국’개정판 작업 후 2년이 흘렀다. 그 기간 남북한의 주목할 변화는 뭔가.
“세 가지다. 이 세 가지는 얽힌 관계이기도 하다. 하나는 김정은 체제가 생존했고 경제부문에서 미약하지만 확실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좋아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악화하지도 않는 안정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게 눈에 띈다. 이는 북한쪽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에는 남북관계를 효과적으로 다룰 역량을 가진 사람이 없어 보인다.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추세라면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중 남북관계에 큰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5월 광주 유니버시아드 게임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는 걸 제대로 활용한다면 진전도 가능하다.
세 번째 정말 중요한 변화는 한국에서 인구 감소를 되돌리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곧 한국 인구는 감소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인구 감소는 경제ㆍ군사 부문 모두에서 의미를 지닌다. 한국 사업가들은 북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정부에 남북관계 개선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 미약하나마 북한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데 저출산 문제로 한국의 경제성장이 장기간 주춤한다면 남북관계에서 한국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시간은 한국 편이라는 걸 전제로 했는데, 인구가 감소한다면 시간은 한국 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북한과 협상을 한다면 북핵도 인정해야 한다는 건가.
“북핵의 위험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과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북핵과 관련, 미국은 2001년 부시 정부 이후 오바마까지 14년을 허비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더 정교하고 파괴적으로 되지 않게 막는 게 중요하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에 좋은 기회를 놓쳤다. 북한이 ‘핵 실험 유예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는데 무시했다. 이 제의는 북핵도 논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 만약 미국이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시설을 둘러보도록 허용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미는 IAEA 관계자의 방북을 조건으로 올 8월로 예정된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을 미루는 대안을 내놓는 등 협상 공간이 생겼을 것이다. 협상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게 시작한다.”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 보나.
“이란 핵 협상 이후 중동 정세가 어지러워져 미국이 그곳에 집중하면 중국은 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힘이 약해진다고 보고 있고, 아시아에서 입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하는 강도가 높아질 것이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펴야 하나.
“나는 분석가이지 정책입안자가 아니지만 확실한 건 5년 전보다도 지금 중국 의존도가 커진 것처럼 앞으로도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체스 게임’을 시작한 건 15년 전부터다. 중국은 당시 한국은 자신과 일본 사이에서 누군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국은 중국을 선택했다. 이제 그들은 중국에 적대적이지 않은 한반도를 원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위협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때로 한국에 거친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사드 문제를 생각해보자. 한국은 ‘우리 안보문제’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중국의 안보문제일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중국을 설득하지 못한 채 사드가 배치되면)중국은 ‘그렇다면 한번 우리의 압력을 느껴보라’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벌인 게임에 참여해버린 셈이다. 한미중 사이의 게임은 갈수록 복잡해질 것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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