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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봄, 다시 흐르는 눈물

입력
2015.04.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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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녹아내려 치아 17개나 빼고

신경섬유종 희귀병 더 악화…

하루 버텨내는 것 자체가 '기적'

옆에 없는 가족 향한 그리움만 커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지금도 아프다. 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단원고 희생자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7)씨는 “4월이 돼서 따뜻한 바람이 불고 꽃망울이 맺히는 모습을 보니까 ‘엄마, 엄마’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금 찾아온, 생명의 첫 시작을 알리는 봄의 따사로움이 정씨는 오히려 몸서리칠 만큼 괴롭다는 호소였다. 정씨는 일도 그만둔 지 오래다.

참사 당시 부모와 형을 모두 잃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조모(8)군은 서울 마포구의 외삼촌 지성진(47)씨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음보를 터트리곤 했던 조군은 지난달부터 형을 찾는 횟수가 유독 늘었다고 한다. 지씨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카의 투정을 들어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난달 초에는 조군이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소개 시간에 ‘저의 엄마 아빠는 세월호 사고로 돌아갔습니다’라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울었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 가족들은 또 한 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고 김동혁군의 형 동현(24)씨는 올해 교환학생 자격으로 중국에 갔다. 어머니 김성실(50)씨는 “동현이가 발인 전날 장례식장에서 ‘동생이 재수없게 내 옷을 입고 가서 죽었다’며 통곡했다. 동생의 빈 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한국을 떠난 것”이라고 전했다.

마음의 병은 몸까지 갉아먹고 있다. 고 이정인군의 아버지 우근(44)씨는 지난 1년 동안 신경이 녹아 내리고 잇몸이 뒤틀려 치아를 17개나 뺐다. 아직도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실종자 허다윤양의 엄마 박은미(45)씨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이 악화했다. 뇌와 양쪽 귀에 생긴 종양이 신경을 눌러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왼쪽도 점점 청력이 약해지고 있다. 치료가 시급하나 박씨는 이날도 광화문 광장에 나와 “실종자를 수습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고 이재욱군 어머니 홍영미(47)씨는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나 친척들도 자식을 잃은 아픔에 공감할 수 없어 만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홍씨에게 친구는 같은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뿐이다.

하루를 버텨내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만 자녀에 대한 그리움은 변함이 없다. 15년 전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웠던 이우근씨는 숨진 정인이가 사고 직전 사준 운동화 한 쪽을 신고 바다에서 나온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큰 맘 먹고 사준 선물이었다. “살아 있을 때 더 잘 해줬어야 하는데, 얼마나 좋았으면 그 신발을 죽을 때까지 신고 있었을까.” 이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보고 싶어도 눈물만 흘려야 하는 유가족이 원하는 건 하나다. 자신의 자녀가 왜 죽었는지 밝혀내고, 그 원인을 제공한 이 사회가 좀 더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뀌는 것이다. 김성실씨는 “사고를 낸 사람들뿐 아니라 잘못된 사회를 모른 척 하고 살았던 나도 가해자”라며 “내가, 우리가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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