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ㆍ구호 제대로 안되자 격분
식수 실은 트럭 위서 물병 투척
관공서 침입해 사무집기 방화도
5,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대지진이 땅과 건물뿐 아니라, 네팔 정부까지 흔들고 있다. 대지진 후 닷새를 넘기도록 구호ㆍ보급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면서 과격 시위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카트만두 버스터미널에서는 카트만두를 떠나 고향이나 시 외곽으로 나서려던 수천명의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특별 차편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배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한 일부 시민들은 식수를 싣고 온 정부 트럭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고 트럭 위에 올라가 물병을 던지면서 격렬히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급파된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리나 투라드하르(28)씨는 “카트만두 시내에는 음식이나 의약품이 충분치 않다”며 “닷새째 추위와 싸우며 노숙 중이지만 정부는 줄을 서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카트만두 인근 상아촉 마을에서는 마을 주민 100여명이 도로에 타이어를 쌓아 쌀과 국수, 비스킷 등 식량을 싣고 가던 보급 트럭 3대를 막아서며 대치했다. 주민 우다브 기리(40)씨는 “식량을 실은 트럭은 우리 마을을 지나쳐갈 뿐 멈추지 않는다”며 “외국 정부와 구호기관이 구호품을 보낸다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카트만두 동부 돌라카에서는 격분한 주민들이 관공서 창문을 깨뜨리고 사무실에 침입해 사무집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눈사태가 발생해 고립된 히말라야 인근에서는 현지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누가 먼저 구조되느냐’를 놓고 충돌을 빚었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헬리콥터는 자국민 구조를 위해 랑탕 계곡에 도착했는데, 구조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이스라엘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주민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성난 시민들의 시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경찰 당국은 시위 규모 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카말 싱밤 경찰 대변인은 “시위가 돌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명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야당도 “총리와 정부의 무능력 때문에 신속한 구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비난 공세에 나섰다. 네팔통일공산당(UNPC) 디나나스 샤르마 대변인은 “국가적인 대 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외국의 구조 손길에만 의존할 뿐 능동적으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정부 측은 “현 재정상황과 인력 여건 하에서 최대한 재난 대응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8일 기준, 공무원들의 40% 이상이 출근을 하지 않고 있어 효율적인 구호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 공무원들에게 집합령을 내리고 30일까지 모두 출근하도록 명령했지만, 출근율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인력이 갖춰지면 더 적극적인 구호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숨진 이들의 가족들에게 1,000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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