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필요 사업의 정리 및 유사ㆍ중복 기능의 통폐합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기능조정’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어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친 계획은 우선 사회간접자본(SOC), 농림ㆍ수산, 문화ㆍ예술 등 3개 분야 8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부채 감축과 임직원 과잉복지 정비에 초점을 뒀던 지난해까지의 작업이 공공기관 정상화를 위한 개혁의 1단계였다면, 이번 계획은 2단계 개혁의 첫발인 셈이다.
SOC 부문 공공기관 가운데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꼽혀왔던 코레일은 물류 화물역을 127개에서 꼭 필요한 80개로 줄이기로 했다. 또 물류, 차량정비ㆍ임대, 유지보수 등 3개 분야는 책임사업부제를 거쳐 자회사로 전환하며, 여객부분의 적자노선엔 민간 사업자가 지선 등을 운영토록 해 보조금 지출을 줄이기로 했다. 부동산 사업의 공룡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중대형 분양주택 공급사업을 중단해 민간과의 불필요한 경합을 없애는 한편, 공공임대주택관리업무도 민간에 개방키로 했다.
연 87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43%에 달하는 225조원의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27개 SOC 공공기관 중에선 이 밖에도 지적공사, 한국감정원, 한국도로공사 등이 본격적인 조직 및 사업 축소에 나서게 된다. 농림ㆍ수산과 문화ㆍ예술 등 2개 분야에선 농어촌공사가 SOC 설계ㆍ감리와 수변개발 사업 등을 민관에 이관하게 되고, 체육인육성재단과 녹색사업단 등이 통폐합될 예정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식으로 줄줄이 나열된 이번 계획은 국민의 눈높이엔 여전히 미흡하다. 강력한 기능조정을 호언했지만 통폐합되는 기관은 4곳에 불과하고, 5,700명의 인력을 재배치하되 인원 감축은 없는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 후 추진됐던 부산 등 4개 항만공사 통폐합은 노조 등의 반대에 밀려 무산됐다. 문화ㆍ예술 분야에서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의 통폐합안 등이 각 예술인단체의 입김에 밀려 좌절됐다.
공공기관은 정부 조직과 마찬가지로 저효율 분야를 도태시키는 시장 규율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연히 과다 부채와 몸집 불리기가 만성화해 인위적으로라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산하 기관이 줄어드는 걸 막으려는 각 부처의 이기주의와 공공노조의 반발 등으로 개혁은 번번이 무산되기 십상이다. 이번 계획 역시 만만찮은 저항을 겪은 끝에 나온 미흡한 개혁 청사진에 불과하다. 따라서 향후 각 부처별로 추진될 구체적 실행과정에서는 예상되는 현장의 저항에 굴복해 더 이상 뒷걸음질 치지 말아야 한다. 이 정도조차 관철하지 못하면 공공기관 개혁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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