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메르스와 씨름을 이어가는 동안 '청와대-보건당국', '보건당국-의료계', '의료계-환자'는 물론 국가와 국민의 소통은 단절됐고 형체 없는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통 난맥상'을 돌아보며 소통의 원칙을 복기해봤다.
1. 솔직하게 다가가라
소통의 기본 원칙은 솔직함, 즉 정직함이다. 솔직하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 신종 감염병인 메르스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는 용기가 없었고, 솔직하지 못했다.
메르스 발병 사실을 정부가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지난달 20일. 정부는 국민혼란을 이유로 발병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치사율 40%로 알려진 메르스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데도 정보 공유가 없자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비공개 원칙'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렵도록 사태를 키웠다. 보건 당국이 애초 1차유행의 진원지였던 평탱성모병원에 대한 정보를 쉬쉬한 탓에, 2차 유행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이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정부가 정보 공개 결정을 미루는 사이 감염자들은 전국의 병원을 옮겨 다녔고, 이제 3차 유행은 현실로 다가왔다. WHO(세계보건기구)-한국 합동평가단도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의 실패가 사태를 확산시켰다'고 진단했다.
2. 잘못은 빨리 인정하라
물을 엎질렀다. 주워 담지 못한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고, 물은 새로 담으면 된다. 엎지른 물에 연연하지 않는 담대한 결정이 필요한 셈이다.
정부는 실패했다. 애초 보건복지부는 국내 첫 메르스 환자 발생 시 밀접접촉자가 아니면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5일 오후 현재 국내 메르스 환자 수는 150명(사망자 16명)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메르스 발병 및 사망국 2위다. 정부의 안일한 판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모든 가능성을 열고 제로베이스에서 점검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엎지른 물에 연연하고 있는 모양새다. 메르스에 대해 잘 몰랐던 초기 실수는 차치하더라도, 정부는 여전히 후진적 대응과 낙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감염병에 대한 '투망'을 더 넓게 던지는 대신 '국내 최고' 삼성서울병원의 자존심을 살리는데 힘을 쏟았고, 기본을 잊은 대응은 화를 키웠다.
3. 상대의 마음을 읽어라
대화의 기본 자세는 눈 맞추기. 상대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면 '마음'이 읽힌다. 대화는 마음을 나누는 일이고, 마음이 통하는 게 곧 소통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대화의 기본은 무시됐다.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근원적 공포 대상이다. 예측이 어려운 위협요인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메르스에 대한 국민적 공포는 당연하다. 영화 '아웃브레이크' '연가시' '감기' 같은 영화에서도 바이러스 자체보다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인류를 잠식했다.
'메르스 공포'에 휩싸인 국민의 마음을 대통령은 읽어내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 발생 16일 만에 처음으로 메르스 방역 현장을 찾았지만, 국가 운영에 책임을 지는 지도자의 모습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정치적 발언으로 실망을 안겼다. 두 번째 현장 방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이 첫 확진자가 나온 지 6일이 지나서야 문형표 복지부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았다는 '늑장 보고' 의혹 등도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부채질했다.
4. 머리를 맞대라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 소통의 사전적 정의다. 서로 통하려면 대화해야 하고, 대화를 통해 더 나은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머리를 맞대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일수도 있다.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지적된 문제는 컨트롤타워와 리더십의 부재. 사태가 확산되면서 정부는 컨트롤타워도 격상시켰고, 전문가도 총 동원했지만 현장의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병원 이송직원 등 격리대상 제외된 이들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면서 보건당국과 병원의 '방역 구멍'이 여전함을 입증한 상태다.
현재 컨트롤타워 부재가 지적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식적인 메르스 관련 기구만 범정부 메르스대책지원본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중앙대책본부 산하 민관종합대응 TF, 청와대의 ‘민간대응팀’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업무 기능과 권한이 중복돼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 지금이라도 컨트롤타워를 한 곳으로 모아 머리를 맞댈 시기다.
5. 진심으로 대하라
진심은 통한다. 이는 만국 공통의 진리다. 설득의 기본 역시 진심. 진심을 얘기해야 상대도 귀 기울이는 법이다.
'메르스 공포'는 종종 미국의 '에볼라 공포'와 비교된다. 지난해 미국의 에볼라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오바마 대통령의 위기 해결 능력이다. 사태 초기 미국 정부도 신종 감염병인 에볼라의 위협성을 예측하지 못해 우왕좌왕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사태 총괄 책임자에 행정전문가인 론 클레인을 지명해 모든 정보 조율과 실무 조치를 전담케 하면서 안정화됐다.
진심도 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해결의 중심에 섰다. 대국민 연설을 통해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고, 에볼라에서 완치된 간호사 니나 팸을 직접 집무실로 초대해 포옹했다. 미국은 에볼라 발생 43일 만에 사태를 종식할 수 있었다.
메르스 발병을 확인한지 26일이 지났다. 정부와 보건당국의 뒷북이 계속되자 '세월호의 교훈'을 잊어버린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아직 늦지 않았다. 소통의 원칙을 되새겨보자.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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