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행주대교 구간서 발령
27일 첫 발견 이후 상류 방향 확산
가뭄ㆍ팔당댐 방류량 급감이 원인
한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간 30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대교 북단의 작은 나루터. 어선과 바지선이 묶여 있는 주변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초록빛이었다. 한강 물이 흐르는 그 짙은 초록 위로 죽은 숭어가 둥둥 떠다녔다. 물 밖으로 떠밀려온 물고기들은 시위하듯 흰 배를 드러낸 채 썩고 있었다. 나루터에서 만난 한상원(57)씨는 몇 남지 않는 한강의 어부다. 행주어촌계 간사인 그가 절반을 자른 빈 생수병으로 물을 퍼 올리자 녹조만 가득 찼다. 손에도 녹조가 덕지덕지 달라 붙었다. 그는 “지금이 사리(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에 밀물이 가장 높은 때)라서 그나마 나아진 게 이렇다”고 했다. 사리 때는 한강으로 바닷물이 밀려와 민물과 섞이게 된다. 그는 “엊그제는 다 시퍼랬다”면서 “올해처럼 심한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행주어촌계와 서울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한강 녹조는 27일 오전 한강 하류 방화대교-신곡수중보 구간에서 처음 발견됐다. 녹조는 점점 상류로 급하게 발달하면서 이날은 잠실 어귀까지 진출했다. 그 사이 30km 곳곳에 팔뚝 만한 숭어 잉어가 폐사한 채 물 위를 떠다니고 있다. 불과 3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 위까지 퍼지는 것은 잠실수중보가 막고 있는 형국이다.
급해진 서울시는 이날 오후2시 잠실대교-행주대교 잠실보 하류구간에 올해 첫 조류경보를 발령했다. 서울시 한강구간에 경보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후 경보가 내려진 것도 처음이다. 한강 상류보다 하류에서 먼저 녹조 사태가 벌어진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시가 29일 잠실수중보 하류 5개 지점에서 조류 검사를 실시한 결과 행주대교와 가장 가까운 성산대교 지점에서 클로로필-a 농도와 남조류세포 수가 모두 조류경보 기준을 초과했다. 비교적 상류 쪽에 위치한 나머지 4곳(성수 한남 한강 마포대교)은 주의보 기준을 초과했다. 성산대교에서는 남조류세포 수가 경보 기준(5,000세포/㎖)을 5배나 웃돌았다.
올 들어 한강이 보여주는 이변 현상은 녹조만이 아니다. 봄에는 독성이 있는 끈벌레가 출현해 한강 생태계를 괴롭혔고, 얼마 전에는 국제멸종위기종 토종 돌고래 상괭이의 사체가 발견됐다. 이런 모든 원인은 가뭄, 한강의 물 부족이 우선 거론된다. 서울시는 올해 6월 팔당댐 방류량이 지난해에 비해 56% 수준으로 크게 줄어 물 흐름이 정체되면서 하천 흐름이 원활하지 못해 녹조가 하류에 확산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상황이 바뀌려면 장마라도 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마른 장마만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이들도 있다. 행주어촌계 측은 녹조와 함께 행주대교 상류에 있는 난지·서남물재생센터의 부실한 하수 처리를 지목했다. 박찬수(57) 행주어촌계장은 “녹조 현상만으로는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지 않는다”며 “(물재생센터에서) 비가 올 때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를 흘려 보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를 부인하고 있는데, 폐수가 원인이라며 향후 보상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김정욱 대한하천학회 회장은 “물 흐름이 있으면 녹조는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녹조 발생의 원인으로 신곡수중보를 꼽았다. 서울환경운동연합도 ▦팔당댐 방류량 감소 ▦난지·서남물재생센터 빗물 처리시설 부족과 함께 ▦물 흐름을 막은 신곡 수중보에 의한 수질 악화를 원인으로 들었다. 이 단체의 김동언 생태도시팀장은 “물을 가둬 흐름을 막는 신곡수중보는 이미 역할을 다한 만큼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8년 만들어진 신곡수중보는 한강이 넓게 흐르는 모습을 만들었다. 이번 녹조의 독성 검사 결과는 3일께나 나올 예정이다.
이환직기자 slamhj@hankookilbo.com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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