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환자 북적이던 하나로의원
내원 급감 경영난 심화로 문닫아
"방역당국 잘못으로 어머니 잃어"
피해자들, 국가ㆍ병원 상대 손배소
9일 서울 중구 하나로의원 출입문 앞에는 각종 쓰레기가 가득 담긴 10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 2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투명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컴컴한 병원 내부는 집기가 대부분 빠져 을씨년스러웠다. 하나로의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거쳐 간 병원 중 처음으로 폐업한 곳이다.
하나로의원은 지난달 2일 메르스 환자가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했고, 닷새 뒤인 7일 병원명이 공개됐다. 원장은 능동감시 대상으로, 격리 조치까진 필요 없었지만 일정 기간 병원 문을 닫았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환자가 다녀간 지 한 달만인 이달 1일 이 병원은 중구 보건소에 폐업 신고서를 냈다. 이은주 중구 보건소 의약과장은 “폐업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메르스 때문에 손님이 줄어 경영난이 심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하나로의원은 환자가 무척 많았던 곳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의 대형쇼핑몰인 밀리오레 인근 건물에 약국, 피부관리실과 함께 입주했던 하나로의원은 정형외과 내과 피부과 등 3개 과목을 진료했다. 하나로의원의 건물 임대를 중개했다는 부동산 관계자는 “2010년쯤 70평 규모의 건물에 입주해 개원했다”며 “중심가라 월 임대료가 900만원으로 비쌌지만, 항상 손님이 많았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 신모(40)씨는 “밀리오레에서 일하는 상인들이 많이 이용했다”며 “나도 혈압약을 받으러 다녔는데, 갈 때마다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고 전했다.
하나로의원이 메르스 거점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인근(200m)에 있던 점도 환자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동대문에 유동인구가 많고, 중국 관광객들도 이 병원을 많이 방문했지만 국립중앙의료원 부근이라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경제적 손실을 본 21개 병원에 16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나로의원은 그 대상도 아니다. 메르스 격리환자가 발생해 병원을 폐쇄했거나 확진자ㆍ접촉자를 진료한 병원만 지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로의원이 있던 곳에는 다른 병원이 개원할 예정이다.
국민들을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환자로 북적였던 하나로의원의 폐업은 메르스가 남긴 대표적인 상처로 남았다.
이날 서울 동숭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강당에서는 메르스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망자와 유가족, 격리 조치로 인한 피해자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와 병원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경실련은 피해자들을 대리해 정부, 지방자치단체,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익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이날 경실련이 제기한 소송은 2건으로,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돼 사망한 45번 환자의 부인 등 6명,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혈액 투석 치료를 받다가 165번 확진 환자가 발생하자 격리조치 된 가족 3명이 원고다. 이들은 정부, 지자체, 병원을 상대로 감염병 관리 및 치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신체ㆍ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손해배상 규모는 45번 환자 유가족은 3억여원, 격리조치 가족은 670여만원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강동성심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염돼 사망한 173번 환자의 장남 김형지(48)씨도 참석해 정부와 의료기관에 울분을 쏟아냈다. 김씨는 “방역당국이 초기에 병원명을 공개했다면 어머니가 다른 감염자를 만나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병원과 언론은 고인이 된 어머니를 ‘슈퍼전파자’로 부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 파렴치범으로 몰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은 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환자를 배려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김씨를 포함한 유가족 6명도 병원 진료기록이 확보되는 대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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