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IT와 관련한 뉴스 중에서 가장 쇼킹했던 것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필자에게는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에 돈을 주고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찰할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했다는 뉴스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 도구를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찰 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뉴스는 항상 정권들이 얼마나 ‘빅브라더’가 되고 싶어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로, 당에서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조지 오웰은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이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사회를 예견했다.
인터넷의 역사를 살펴 보면, 거기에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개방과 공유라는 정신이 아로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의 이런 개방성이 큰 위기에 봉착한 느낌이다. 이는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미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NSA)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주요 정보들을 빼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라는 컴퓨터 엔지니어가 가디언을 통해 폭로한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이와 같은 몇몇 국가들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인터넷이 가지고 있었던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이면서,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던 인터넷에 대해 여러 국가들이 서로 관여하겠다고 아우성치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사이버 범죄에 대비해 인터넷 망 분리를 의무화했다. 몇몇 나라에서는 인터넷 망을 폐쇄하고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데, 2013년 11월 2일 영국의 가디언은 브라질, 독일, 인도 등이 독자 통신망 구축에 나서 인터넷이 지역 단위로 쪼개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미 중국정부는 수백 만명의 인원을 동원해서 인터넷을 검열하고 있다. 인터넷 만리장성(the Great Firewall)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선별적으로 차단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인터넷 망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이런 여러 나라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인터넷의 국가통제와 관련한 우려는 이미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의 2009년 TED 강연에서 강력하게 제기된 바 있다. 그는 '인터넷이 민주화를 어떻게 방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 인물이다. 그는 사이버유토피아론자들이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민주화를 촉진시킨다고 말하지만, 이는 이상론에 불과한 '아이팟 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의 의도된 사용법과 실제 사용법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에서는 정부에서 블로거들과 소셜 네트워크 사용자들을 고용하고 훈련시키고 돈을 지불해서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관해 이념적 댓글을 남기고 이념적 블로그글을 잔뜩 쓰도록 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한다. (▶ 에브게니 모조로프 TED 강연 보기)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동원된 댓글 조작사건은 사실 에브게니 모로조프가 이야기한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인터넷과 소셜 웹이 무조건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고, 시민의 편이라는 것은 선입견일 수 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되려 활동가들을 감시하는데 이런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개된 출처를 통해서 정보들을 모을 수 있으며, 사찰을 한다면 활동동향을 알기도 쉽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이라는 고전에서 자유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틀렸다거나 해롭다는 이유로 의견의 표명을 가로막으면 안되며, 표현의 자유를 일부만 제한하게 되면 곧 모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만다. 그러므로, 표현의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어야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 단, 이런 자유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면 안 된다.”
그의 이와 같은 자유의 원칙에 대한 주장은 오늘날 전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는 시민의 기본권으로서 포괄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자유론의 기본적인 원칙들은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최근의 디지털 환경의 변화는 자유에 대한 의미에 대해 조금은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있다.
자유를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자원들에 대한 제어권을 가져야 한다. 이메일과 일정, 주소록은 물론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와 연결관계, 위치 등과 같은 개인과 연관된 자원들이 클라우드에 남게 되고, 이를 거대한 빅브라더가 가져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빅브라더가 무서워서 현재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장점과 혜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개개인의 데이터와 네트워크는 모두 그 사람들의 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자유"라는 권리에 대해서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하며,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나 인터넷을 악용해서 사람들을 감시하려는 국가의 빅브라더로의 변신을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야기하고 저항하지 않는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구축되어온 인터넷의 정신은 뿌리채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글로벌 시민들에게 "자유"를 선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이런 본질을 잃는 순간, 인터넷은 정말 큰 위기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모바일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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