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이 롯데 경영권 분쟁으로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재벌기업의 얽히고설킨 기존 순환출자를 손대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대신 대기업 총수의 해외계열사 지분ㆍ출자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순환출자의 경우 기업 자율적으로 해소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새누리당과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국회에서 ‘대기업집단 이슈를 논의하기 위한 당정협의’를 열고 공정거래법을 일부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당정협의에는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나성린 당 민생본부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이동엽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이 참석했다.
우선 당정은 대기업 총수의 해외계열사 지분ㆍ출자 현황 공시 의무를 공정거래법에 담는 것에 합의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외국 법인에 대해서는 한국 공권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지만, 총수가 국내에 있을 때 공시 의무를 부과하면 제대로 된 자료를 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소재 롯데 계열사들이 호텔롯데(99.3%), 부산롯데호텔(99.9%), 롯데물산(62.0%) 등 국내 주요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지만, 정작 일본 내 롯데 계열사의 정확한 지분 구조가 어떠한지는 베일에 싸여있는 상태다. 현행법상 해외법인은 국내 공시 의무가 없어, 공정위와 금감원 등 당국조차 국내 롯데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일본 내 법인의 지배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해외 법인을 순환출자 구조 중간에 끼워 넣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숨길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와 함께 공정위는 “롯데가 관련 자료를 누락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이달 20일까지 해외계열사 소유 실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며 “지금까지 허위 자료를 낸 것이 확인되면 제재 조치를 할 것”이라고 당정협의에서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자산 5조원 이상) 자료 제출시 해외계열사가 소유한 국내계열사 지분은 총수 관련 지분에 포함되어야 함에도, 롯데는 이를 총수와 무관한 ‘기타주주’ 지분으로 보고해 왔다.
그러나 당정의 대책은 여기까지였다. 김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존 순환출자 금지’를 시사했던 것에서 한 발 물러나, “기존 순환출자 해소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 (당정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여당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에 대한 역겨운 배신”(서청원 최고위원)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에 비하면 한풀 꺾인 분위기다.
공정위 역시 당정협의에서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총수가 아닌 해외계열사 법인에 공시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고려됐으나 공정위는 “법 집행의 한계가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당정의 방안은 현행 규제에서 거의 변한 게 없고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지금까지도 공정위가 자율적으로 롯데그룹에 순환출자 해소를 권고해 왔으나 416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고리가 유지되고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해외법인 공시를 하겠다는데 해외 비상장 법인이 거짓으로 보고하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며 “근본 해결을 위해서는 경과 규정을 둬 순수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하는 등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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