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정보 입력하면 손쉽게 대출… 판매 업체와 짜고 허위 거래
6년간 대출금 편취 50개 기업 적발… 신보·은행 심사도 무용지물
일반 보증보다 부실률 훨씬 높아… 모니터링 강화 등 제도 보완 필요
정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이 담보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운영해 온 ‘B2B(기업간거래) 구매자금대출’ 상품이 거래 내역을 허위로 꾸며 대출을 받는 식으로 악용된 사례가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신보나 대출은행들이 구매자와 판매자간에 실제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B2B 구매자금대출이란 물품 구매기업과 판매기업 간 물품 거래 시 구매기업이 신용보증기금 보증 하에 은행 대출금으로 물품대금을 지급하고 3~6개월 후 대출 은행에 대출금을 갚는 제도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판매기업 입장에선 기존의 어음결제 방식보다 물품 대금 회수가 쉽고 안전해진다. 기업 간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해 정부의 세수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제도 도입의 배경이었다. 때문에 이 대출의 보증 한도액은 70억원으로 일반대출(30억원)보다 2.3배 높다. 보증료(통상 보증금액의 0.5~3.0%)도 0.1%포인트 낮고, 세액공제와 금리를 인하(0.3~0.5% 추가 우대)해주는 등 혜택이 많다.
문제는 제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수년간 방치돼 왔다는 점이다. 3일 금융권과 검찰에 따르면 2009년 이후 6년간 신보가 이 제도로 보증을 한 총 1만9,039건 가운데 이 같은 부실이 발생한 건수는 13.2%인 2,526건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신보가 손실을 본 금액은 6,142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신보가 대출 보증을 했다 부실이 발생해 은행에 대신 돈을 갚아준 금액 7,365억원의 83.3%에 해당되는 수치다.
이는 운영 과정에서의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B2B 구매자금대출은 신보가 구매기업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보증 한도를 책정해준다. 신보는 일반보증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재무구조와 사업계획서 등을 따져 보증을 승인해준다. 이 과정을 거치면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을 받게 돼 이 한도 내에서 해당기업은 자유롭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물품대금을 지급할 수 있다.
하지만 신보의 심사 이후엔 아무런 사후 관리 시스템이 없다. 대출이 이뤄지는 은행도 심사를 하는 절차가 있지만, 신보의 보증을 거친 기업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년 간 부실이 발생했음에도 방치가 된 이유다.
가장 중요한 거래 실적에 대한 입증이 온라인 상에서 이뤄진다는 점도 문제다. 구매기업이 판매기업 간 거래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개설된 중개업체 사이트에 입력하기만 하면 손쉽게 대출까지 받게 되는 구조다.
이런 까닭에 이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구매기업과 판매기업이 공모를 해 허위 계약서·전자세금계산서 등 거짓 거래 정보를 입력하는 식이다. 실제로 서울서부지검이 전날 발표한 B2B 구매자금대출 비리 수사 결과에 따르면 50개 기업들이 신보에서 대출보증을 받은 후 허위 거래를 통해 시중은행으로부터 총 1,437억원 가량의 대출금을 반복 편취했다.
신보 역시 이 제도의 사후 검증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B2B 대출 보증의 경우 자금을 받게 되는 곳(판매기업)이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제도에 비해 검증 시스템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 등의 대책과 함께 신보나 은행이 실제 상거래가 발생하는지를 확인하도록 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계 관계자는 “신보가 보증한도를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전자세금계산서의 진위 확인 과정까지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