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북 접근, 행간 읽어야
미중이 북에 ‘갑’일 수는 없어
틀에 박힌 한미 정상회담 의미없어
잠시 시간을 거슬러 보자. 지난달 초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해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발언이다. 열병식 때에는 과거 김일성 주석이 자리했던 톈안먼 성루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신 앉았다. 북한으로서는 혈맹이라던 북중관계의 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돌아오는 기내에서는 북한붕괴와 흡수통일의 냄새가 나는 통일일괄 해법안을 불쑥 내놓았다. 중국과 깊숙한 얘기를 나누고 ‘추인’까지 받았다는 투였다.
그 달 말 워싱턴 미중 정상회담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어떤 행동도 반대한다”고 거듭 경고했다. 안보리 결의까지 거론해 강도도 더 세졌다. 다른 자리도 아닌 미중 정상회담장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이렇게 강하게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북한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진 듯했다. 북한이 사면초가의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행사를 계기로 이런 기류는 바뀌었다. 북한은 강력히 시사한 장거리로켓 발사나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시 주석의 최측근이자 권력서열 5위의 최고위급인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을 시 주석의 친서까지 맡겨 평양에 보냈다. 친서에서는 “중조 우의가 대를 이어 전승되기를 희망한다”고 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 인정했다. ‘순망치한’이라는 북중관계도 확인했다.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비핵화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2013년 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급격히 냉각됐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달 정도의 시차를 두고 드러난 장면은 분명 혼란스럽다. 북한에 맞서는 한국과 미국에 립서비스 한 것인지, 실제 중국 대북정책이 갈팡질팡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중국에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북한발 변수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과 우리 당국자들이 이런 가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이 달라졌다는 것, 최소한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도 북한에 대해 항상 ‘갑’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장거리로켓 발사와 핵실험 위협에 중국이 굴복했다는 인상마저 준다. 사실 북한의 위협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중국에게도, 핵확산을 막아야 하는 미국에게도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이런 고민은 이들의 북한에 대한 접근법을 한층 복잡하고 하고, 이는 우리의 외교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환심만 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북한을 제재의 대상으로만 보는 단순한 인식으로는 환심을 살 수도 없다.
16일 열릴 박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의 주 의제도 북한이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북한을 둘러싼 미국 중국, 그리고 우리의 대응이 각자도생의 길로 분화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둘째 문제로 치고라도 말이다.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조야에 퍼진 우리의 ‘중국경사론’을 해명하는 것도 중요한 이슈라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턱없는 중국 밀착 오해를 푸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대중국 외교를 몇 번이고 미국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현실도 탐탁지는 않다. “빛 샐 틈 없는 최상의 한미관계”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중국에 현실과 동떨어진 통일외교를 얘기하고, 미국에는 ‘우리는 언제나 미국편’이라는 것을 설명하느라 정력을 소모할 게 아니라, 북한 변수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어떤 주변국 외교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만큼은 한미동맹의 굳건한 결속을 재확인했다느니,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처에 이견이 없었다는 등의 판에 박힌 얘기만 하고 끝나는 정상회담이 아니었으면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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