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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 더 내는 건보료 불공평 체계, 올해도 안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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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 더 내는 건보료 불공평 체계, 올해도 안 바꾸나

입력
2015.10.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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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직장가입자 나눈 부과체계

자영업·퇴직자 등은 재산에도 부과

부양의무자 면제 혜택조차 없어

상당수 자산가는 자식에 무임승차

생계형 체납 세대 100만 달하지만

총선 코앞에… 정부, 고소득층 눈치

충북 충주시에 혼자 사는 A(85)씨는 소득이 없어 노인복지회관에서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매달 3만6,150원의 건강보험료가 꼬박꼬박 부과된다. 충주 변두리에 퇴락한 상가 건물(1,100만원)과 작은 산(1,900만원)이 있기 때문이다. 세금 체납으로 압류된 상가건물에선 아무런 소득이 없고, 부모님 묘가 있는 산은 마음대로 팔 수도 없다. 수입이 없는 최씨는 2013년부터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결국 그의 선산을 지난해 압류했다. 최씨는 “내게는 3만6,150원이 적지 않은 돈”이라며 억울해 했으나 건보공단은 ‘법대로’란 입장이다.

같은 충주에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이사 B(62)씨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그는 서울에 있는 50억원대 9층 빌딩을 자녀에게 물려줬고 3억원이 넘는 아파트도 있다. 금융소득만 연 2억1,000만원에 이르는 재력가지만 그가 내는 월 보험료는 8,380원이다. A씨의 4분의 1도 안 되는 보험료를 내는 비결은 월 수입을 10만원으로 신고한 데 있다. 대표이사 월급치고는 너무 적어 건보공단이 여러 번 확인했지만 B씨는“10만원이 맞다”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건보공단 측은 “급여 대장을 허위로 꾸민 의심이 가지만 이대로 부과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는 ‘현실론’을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불공평한 부과체계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이유는 보험료를 산정하는 ‘부과체계’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 돼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는 직장가입자는 월급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매기고 부모나 자녀도 부양의무자로 인정된다. 그러나 농어민 은퇴ㆍ실직ㆍ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 자동차에도 보험료를 부과하고 부양의무자 혜택도 없다. 더구나 연간 종합소득 500만원 이하의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전ㆍ월세 보증금뿐 아니라 성별과 연령(평가 소득)까지 따져 보험료가 부과된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지하 셋방에서 살며, 식당일 하는 어머니 월급 130만원으로 세 식구 생계를 유지했던 ‘송파 세 모녀’가 매달 건보료 5만140원을 낸 것도 이런 까닭이다.

기형적인 부과체계 때문에 정말 돈이 없어 못 내는 생계형 건보료 체납 세대는 100만에 달한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월 보험료가 5만원 이하인 저소득 가구 중 98만1,000세대(올해 7월 기준)가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다. 여기에는 월 최저 보험료인 3,560원을 내지 못해 건강보험 이용에 제약을 받는 가구가 8,000세대, 독립ㆍ국가 유공자 및 후손 가구도 1,000세대가 포함돼 있다.

반면 직장에 다니는 아들 딸에게 피부양자로 얹혀 보험료는 한 푼도 안내지만 주택을 한 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404만명이나 된다. 피부양자(2,044만 명) 5명 중 1명은 집이 있다는 얘기다. 이 중 3채 이상 가진 사람도 68만명, 5채 이상 가진 사람도 무려 16만명이 넘는다.

결국 이원화된 부과체계로 인해 ‘없는’ 저소득자의 보험료율은 높아지는 반면, 고소득자의 보험료율은 낮아지면서 ‘있는’ 피부양자는 건보 재정을 위협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 건보공단 지사에는 “없는 사람 돈 거둬 있는 사람들 병원비 대 주는 게 건강보험이냐”, “자식이 번듯한 직장 얻지 못한 서민한테는 보험료 매기고 자식이 좋은 직장 다니고 자기 재산도 많은 사람한테는 돈 한 푼 안 매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 중 임금 근로자 325만명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원성은 높아지고 있다.

반발 여론 눈치에 개선 거듭 미뤄

없는 사람이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기형적인 부과체계의 개편 필요성은 10여 년 전부터 계속해 제기된 문제다. 2000년 지역조합과 직장조합의 통합으로 건강보험공단이 탄생했지만, 조직과 재정만 통합되고 지역과 직장의 서로 다른 보험료 부과체계는 손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원화된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의 단일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 경우 상당한 금융소득을 가진 자산가나 연금을 많이 받지만 자녀 피부양자로 얹혀 무임승차해 온 이들에게 보험료가 부과된다. 정부는 이들의 반발을 의식, 직장가입자 중 이자ㆍ사업소득 등 월급 외 종합소득이 7,200만원을 넘을 경우 건보료를 부과하거나, 연금소득 4,000만원 이상인 경우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 정도의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개편만 해왔다.

부과체계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2012년 초다. 복지부 출신으로 건강보험 도입 당시부터 실무를 담당한 김종대 당시 건보공단 이사장이 ‘부과체계의 모순’을 공론화 하면서다. 복지부는 이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개선단)과 함께 개편안을 마련, 올 초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담뱃값 인상, 연말정산 파동으로 증세논란이 일자 돌연 “일부 직장인과 피부양자 부담이 늘어난다”며 이를 백지화했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건보 부과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외면한 것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복지부는 즉각 폐지 의견이 많았던 자동차 대한 보험료 부과를 당분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가장 민감한 사안인 자녀에게 얹혀 있는 ‘있는’ 피부양자들의 피부양 자격 박탈 기준은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실상 부과체계를 개편할 의지가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에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고소득층 보험료를 올리는 개혁을 정부가 추진하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사공진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과체계 개편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데, 정부는 고소득층 건보료 인상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고 꼬집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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