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선다. 총액 약 386조원 규모에 이르는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법정시한(12월2일) 내 예산안 심의ㆍ처리와 노동개혁 관련 법안을 비롯한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한 처리를 위한 국회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시정연설은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의 대의기관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직접 설명하는 ‘국민과의 소통’ 자리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에 시작한 국회 시정연설에 3년 연속 나서는 첫 대통령이다. 그 동안 역대 대통령은 취임 첫 해만 상징적 의미에서 직접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을 뿐 이듬해부터는 국무총리에게 대독하도록 했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정착시켜 온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새해 예산안과 경제활성화법 등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최대 정치쟁점으로 떠오른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밝힐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더욱이 그 내용이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펴온 주장과 거의 그대로일 것이란 예상도 자연스럽다. 실질적으로 국정화 논의의 핵심 축이 박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국정화 논란의 당사자가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나선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또한 직접 국민에게 설명해 이해를 구하려는 자세 또한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의 일반적 통치행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국정화 논란의 전개 양상에 비추어, 또 정부ㆍ여당과 보수 세력이 적극적으로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데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의 반대가 날이 갈수록 뚜렷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그래도 국정화!”만 외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시정연설이라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는 소통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독선이 된다. 그런 독선이 국민적 논란의 출발점임이 확인되면 찬반 논란이 더욱 가열돼 국민을 더욱 분명하게 가를 게 뻔하다. 그런 결과는 3년 연속 국회 시정연설이라는 의미 또한 퇴색시킨다.
더욱이 최근의 청와대 5자 회동에서 보여준 야당과의 날카로운 대립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예산안과 법안 처리를 위한 협조를 야당에 요청하는 모양새도 이상하다. 야당은 이미 ‘국정화 저지’에 당론을 모았고, 사실상 이 문제를 예산안ㆍ법안 심의와 연계할 태세다. 야당의 요구는 못 들은 척하며 일방적 협조만 요구해서는, 야당의 연계 방침을 굳게 하는 한편으로 “연계는 안 된다”는 여론만 희석시킨다. 국정화 포기를 선언하기 어렵다면 논란을 뒤로 미루겠다는 뜻이라도 밝혀 야당의 연계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마비 상태인 의정도 살아나고, 국론분열도 해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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