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를 앞둔 고대영 KBS 사장 최종후보(KBS비즈니스 사장)는 KBS 내부 구성원이 꼽은 ‘최악의 사장후보’다. KBS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역임 당시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축소하거나 불방시키는 전횡을 일삼아 2012년 불신임 투표(84.4%)에 따라 물러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 임명제청권이 있는 KBS 이사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과정이 매번 자격 시비와 노사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은 사장 추천권을 가진 이사회,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치편향이 심각한 탓이다. 방통위와 이사회가 방송의 공영성 확보는 안중에도 없이 정권 유지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2003년 노무현 정부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KBS 이사회, MBC 방송문화진흥회, EBS 이사회의 수장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문성보다 이념적 지향을 우선시하는 인선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현 정부에서 임명한 7명의 위원장ㆍ이사장 중 언론학자나 언론인은 한 명도 없고, 뉴라이트 계열 학자와 판ㆍ검사가 절대 다수(5명)를 차지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사실 방통위원장 등에 친정권 인사를 앉히는 것은 역대 정부의 공통된 현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정보통신정책특보 출신의 성영소 전 한국통신문화재단 이사장을 EBS 이사장에 앉혔고, 호남 출신의 노성대 방송위원장, 이종수 KBS 이사장을 임명해 정치적 독립성 침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의 인선은 언론인과 언론학자(56%) 중심이었다. 노사정위원장 출신의 김금수 KBS 이사장, 방송인인 김세원 EBS 이사장이 의외의 인물로 꼽힌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기구 개편에 따라 방송위와 통신위를 통합하고 기능을 나눠 방통위와 방통심의위가 신설됨에 따라 대통령의 측근 인맥이 동원됐다. 대통령 핵심 참모 6인회의 멤버였던 최시중씨와 고려대 후배로 정보통신부 차관을 역임한 이계철씨가 임기 내내 방통위를 장악했다. 또 보수ㆍ뉴라이트 성향의 언론학자 유재천, 김우룡 교수를 각각 KBS 이사장, MBC 방문진 이사장으로 발탁해 정연주 KBS 사장과 엄기영 MBC 사장을 밀어내는 일을 진두지휘했다.
기업인(18%)과 검사 출신 변호사(18%)의 등장도 눈에 띈다. 공안검사 출신 박만 변호사가 방통심의위원장에 임명됐고, 역시 공안검사 출신인 고영주 현 방문진 이사장이 감사로 입성했으며, MBC 방문진 이사에서 KBS 이사회로 자리를 옮겨 3연임의 신화를 이룩한 차기환 변호사도 이명박 정부에 의해 발탁된 인사다. 전경련 부회장을 역임한 손병두씨와 고려대 후배이자 벽산 대표 김재우씨를 각각 KBS 이사장과 MBC 방문진 이사장으로 등용한 것도 기업인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의 인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정부 들어 극우화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아직 임기 절반밖에 지나지 않아 전체 대상이 7명에 불과하지만 언론학자를 단 한 명도 임명하지 않은 것은 예사로 보기 어렵다. 대신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와 법학자가 3명(43%), 판ㆍ검사 출신이 2명(29%)이며 나머지 2명은 정치인과 관료 출신이다.
이렇게 임용된 역사학자 이인호 KBS 이사장은 지난 6월 KBS 뉴스의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에 발끈해 임시 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보도 개입으로 반발을 샀고,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했던 윤리학자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KBS 뉴스 특종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보도와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에 징계를 내려 표적심의 논란을 일으켰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에게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사퇴를 종용 받고 있는 것도 도를 넘은 이념적 편향성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방송을 장악해 정부 비판을 억누르겠다는 정권의 야욕은 오히려 국민 분열과 정쟁을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권의 인맥을 활용한 언론 장악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이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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