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 으뜸은 ‘원전 하나 줄이기’다. 구나 동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이제 서울에서는 태양광 패널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미니 태양광 패널을 발견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에너지 자립 마을이란 이름도, 에너지 농부나 에너지 보안관, 에너지 절전소란 말도 낯설지 않다. 에코마일리지나 에너지 컨설턴트, 에너지 슈퍼마켓이란 용어 익숙해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기후변화, 밀양 송전탑 갈등을 배경으로 2012년 4월 원전 하나 줄이기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말까지 에너지 절약과 이용 효율 개선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거나 신ㆍ재생에너지로 생산을 늘려 원전 한 기가 생산하는 석유 200만 톤의 에너지를 대체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런데 이 목표는 6개월 앞당겨 달성되었다. 2011년 이후 전국적으로는 전기, 도시가스, 석유 소비가 모두 늘어났지만 서울시는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8월부터는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가 시작되었다.“시민이 살리고 시민을 살리는 에너지 살림도시, 서울”이란 기치 아래 에너지 자립과 나눔, 참여란 가치를 담아 2020년까지 원전 2기 분량의 에너지 감축과 전력자립도 20% 달성, 이산화탄소 1,000만 톤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시의 독자적인 신ㆍ재생에너지 지원 정책 등에 힘입어 에너지ㆍ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시민 참여가 늘어나면서 에너지 살림도시의 꿈이 조금씩 실현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껏 중앙정부의 영역으로 간주되어 온 에너지 분야에 지방정부도 개입할 수 있고 에너지 문제를 정부만이 아니라 시민 중심으로 풀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서울시의 활약은 경기도를 비롯해 국내 다른 지자체들에도 영향을 줄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서울시는 ‘2015 글로벌 최우수 도시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기후변화 에너지 분야의 상을 두루 받았다. 서울시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늘고 있으며 벤치마킹하려는 도시도 증가 추세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완공에 가까운 원자로의 건설 동결을 선언하면서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을 접은 대만은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대만의 주요 도시 타이베이, 신베이, 가오슝이 서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영국의 네스타라는 단체는 서울을 스마트시티 모범 사례로 소개했다.
서울 시내버스 앞 승강구 위에는 “절약하는 당신이 원전 하나 줄이는 녹색발전소” “함께 아낀 에너지, 함께 줄인 원전 하나”란 문구가 적혀 있다. 원전을 줄여가거나 기후변화 위험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원전 위험과 기후변화 위험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회피하고 막아야 할 문제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절전소이자 녹색발전소가 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함께 에너지를 아껴 나간다면, 함께 에너지 농부가 된다면 우리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원전을 서서히 줄여가면서 기후변화 위험도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전하는 체르노빌의 오늘이나, 정치나 종교 갈등만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으로 삶터에서 쫓겨나는 시리아 기후 난민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오는 11일 국내외 에너지 석학들이 참여하는 ‘서울국제에너지컨퍼런스’가 열린다. 세 번째를 맞는 올해 행사는 ‘도시 에너지, 그 미래를 보다’가 주제다. 이 행사에 참여해서 세계가 지금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듣고 보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터에서 실천하자. 나아가 요구하자. 법과 제도와 정책을 바꾸라고. 아직도 개선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서울을 넘어 전국이 함께 하려면 중앙정부가 바뀌어야 한다. 시민이 나서자. 시민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오늘의 에너지 현실을 바꾸는 에너지니까.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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